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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에서 순간으로 그리고 매 걸음마다, 바보는 과거를 뒤에 두고 간다. 그는 맑음, 순수 그리고 신뢰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손에 들고 있는 하얀 장미로 상징된다. 그가 입은 조끼의 무늬는 타로 카드의 네 가지 모든 원소의 색깔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가 주위의 모든 것과 조화 속에 있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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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직관은 그 절정에서 기능을 다하고 있다. 이 순간 그는 이런 미지(未知) 속으로의 도약을 할 수 있도록 우주의 도움을 받고 있다. 모험들이 삶의 강물 속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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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바로 지금, 당신의 직관을 모든 일들에서 당신의 ‘옳다’는 느낌을 신뢰한다면, 당신은 잘못 갈 수 없음을 이 카드는 나타내고 있다. 자신의 행동들을 이성적인 마음으로 분석하려고 한다면, 당신의 행동들은 남들에게 또는 자신에게조차 ‘바보처럼’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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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카드가 차지하고 있는 ‘0’이라는 위치는 회의(懷疑)와 과거의 경험이 아닌, 신뢰와 순수가 그 인도자들인 ‘번호 없는 번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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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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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는 계속해서 신뢰하는 사람이다. 바보는 자신의 경험과는 반대로 계속 신뢰한다. 그대는 그를 속인다, 그리고 그는 그대를 신뢰한다. 그리고 다시 그대는 그를 속인다, 그리고 그는 그대를 신뢰한다. 또 그대는 그를 속인다, 그리고 그는 그대를 신뢰한다. 그러면 그대는 그가 바보라고, 그가 배우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의 신뢰는 엄청나다. 그의 신뢰는 너무나 순수해서 아무도 그 신뢰를 더럽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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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에서, 선(禪)에서 의미하는 바보가 되어라. 그대 주위에 지식의 벽을 만들려고 하지 말라. 그대에게 어떠한 경험이 찾아오든 그것이 일어나도록 하라, 그리고는 그것을 계속 떨쳐 버려라. 끊임없이 그대의 마음을 씻어 내라. 계속 과거에 대해 죽고 마치 갓 태어난 것처럼, 아기처럼, 현재에, 지금-여기(here-now)에 남아 있어라. 처음에는 그것이 아주 어려울 것이다. 세상이 그대를 이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둬라. 그들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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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그대가 속임을 당하고, 사기를 당하고, 강도를 당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둬라. 왜냐 하면 진정으로 그대의 것은 그대로부터 빼앗길 수가 없고, 진정으로 그대의 것은 그 어느 누구도 그대로부터 훔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가 매번, 상황들이 그대를 더럽히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 기회는 내면에서 하나의 통합이 될 것이다. 그대의 영혼은 더욱더 결정화(結晶化)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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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카드의 나체의 여인은 완벽함의 연꽃잎 위에 앉아,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는, 진정한 집은 외부 세계의 물질적인 어떤 곳이 아니라, 이완과 수용이라는 내면의 질(質)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별들, 바위들, 나무들, 꽃들, 물고기와 새들 - 이 모든 것들이, 이 삶의 춤 속에서 우리들의 형제자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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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각자가 개인적으로 계획해 놓은 일들을 쫓다가 이 사실을 잊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분리의 느낌은 마음의 좁은 편견들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환영(幻影)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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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자기 자신에게 ‘편안한(at home)’ 느낌을 허용하고 있는지 살펴볼 때이다. 만약 허용하고 있다면 그것이 깊어지고, 그것이 당신의 것이 될 수 있도록 그것을 천천히 음미하라. 만약 반대로 세상이 당신을 완전히 지치게 하는 것처럼 느껴 왔다면, 이제 휴식의 시간을 가질 때이다. 오늘 밤, 밖으로 나가 별들을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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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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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우연이 아니다. 존재는 그대가 필요하다. 그대가 없다면, 존재 속에 무언가가 빠져 있을 것이고, 그 어느 누구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존재 전체가 그대를 그리워할 것이라는 것, 그것이 그대에게 존엄성을 준다. 별들과 태양과 달, 나무들과 새들과 땅 -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그대 이외에는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채워질 수 없는, 작은 자리 하나가 비어 있음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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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존재와 관계되어 있다, 그리고 존재가 그대를 보살펴 준다, 이것은 그대에게 커다란 기쁨이며 행복이다. 일단 그대가 깨끗해지고 맑아지면, 모든 차원에서부터 그대에게 엄청난 사랑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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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면의 목소리는 말로서가 아닌, 말 없는 가슴의 언어로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진리만을 이야기하는 신의 계시와도 같다. ‘내면의 목소리’가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이 카드의 중앙에 있는 얼굴과 같을 것이다 - 깨어서 지켜보며 빛과 어둠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빛과 어둠은 수정을 들고 있는 양 손에 의해 상징된다. 수정 그 자체는 모든 이중성들을 초월하는 것에서 오는 명료함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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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목소리’가 감정들 속 깊이 잠수했다가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올 때, 그 목소리는 삶의 바다 속에서 춤추는 두 마리 돌고래처럼 즐거울 수도 있다. 그것은 초승달 왕관을 통해 우주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림 속 인물의 기모노에 있는 푸른 잎들에 의해 상징되는 것처럼 땅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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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속에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우리를 이리 저리 끌고 다니는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러한 상황들 속에서 생기는 우리의 혼란스러움이 바로 침묵을 찾으라고, 내면의 중심을 잡으라고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리고 오직 그 때에만 우리는 우리의 진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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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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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자신 안에서 그대의 진리를 발견했다면, 존재 전체 안에서 더 발견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진리가 그대를 통해서 움직이고 있다. 그대가 눈을 뜰 때, 진리가 자신의 눈을 뜨고 있는 것이다. 그대가 눈을 감을 때, 진리가 자신의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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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하나의 엄청난 명상이다. 그대가 이것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그대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대가 무엇을 행하고 있든지, 그것은 진리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걷고 있다, 그것은 진리이다. 그대는 잠을 자고 있다, 쉬고 있는 것은 진리이다. 그대는 말을 하고 있다,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진리이다. 그대는 침묵하고 있다, 침묵하고 있는 것은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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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주 간단한 명상 테크닉 중의 하나이다. 서서히, 서서히, 이 간단한 공식에 의해 모든 것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나면 더 이상 그 테크닉은 필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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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치료될 때 그대는 명상을 버린다, 그대는 약을 버린다. 그러면 그대는 진리로서 산다 - 그대 자신에게 살아 있고 빛을 발하며, 만족스럽고 지복스러운 하나의 노래로서……. 그대의 삶 전체는, 하나의 말 없는 기도가 된다. 아니, 그보다는 속세에 속하지 않는 하나의 기도함(prayerfulness), 하나의 우아함, 하나의 아름다움 그리고 저 너머에서 우리 세상의 어둠 속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된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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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래에 있는 물과 불의 연금술에서부터, 위에서 들어오고 있는 신성(神性)의 빛에 이르기까지, 이 카드의 인물은 문자 그대로 창조의 힘에 ‘사로잡혀’ 있다. 실제로 창조성의 경험은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통로이다. 기법, 전문적 기술, 지식은 단지 도구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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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열쇠는, 만물의 생성의 연료가 되는 에너지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이 에너지는 어떠한 형상도, 틀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모든 형상과 틀은 이 에너지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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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창조성이 어떤 특정한 형태를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 그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 혹은 노래를 부르는 것, 정원을 가꾸는 것 혹은 요리를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을 통해 표현되고자 하는 것에 열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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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의 창조물들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들은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 진정한 창조성은 신성과의 합일에서, 신비와 ‘알 수 없는 것’과의 합일에서 생겨난다. 그 때 그것은 창조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기쁨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축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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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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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이란 그대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상적인 활동들로 가져와야 하는 질(質)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하나의 태도, 하나의 내적인 접근 방식 - 어떻게 그대가 사물들을 바라보는가 - 이다. 모든 사람이 화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만약 모든 사람이 화가라면 세상은 아주 추할 것이다. 살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무용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창조적이 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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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무엇을 하든, 만약 그대가 그것을 즐겁게 한다면, 만약 그대가 그것을 애정을 갖고 한다면, 만약 그대의 행위가 순전히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 때 그것은 창조적인 것이다. 만약 그것으로 인해 그대가, 그대 안에 성장해 가고 있는 그 무엇을 갖는다면, 만약 그것이 그대에게 성장을 준다면, 그 행위는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창조적인 것이다, 그것은 신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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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창조적이 될수록, 그대는 더 신성해진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신은 창조자”라고 말해 왔다. 나는 그가 창조자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 가지는, 그대가 더 창조적이 될수록, 그대가 더 신성하게(godly)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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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창조성이 하나의 절정에 이르게 될 때, 그대의 삶 전체가 창조적이 될 때, 그대는 신 안에서 산다. 창조적이었던 사람들이 신의 가장 가까이에 있어 왔던 것을 보면, 신은 창조자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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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하는 것을 사랑하라. 그대가 그것을 하는 동안 명상적이어라 - 그것이 무엇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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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에 나오는 강력하고, 권위 있는 인물은 분명히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다. 그의 어깨에는 태양의 문장(紋章)이 있으며,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횃불은, 그 자신이 어렵게 얻은 진리의 빛을 상징한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그는 진정한 황제이다. 왜냐 하면 그는 사회의 억압적인 조건화(conditioning)와 의견들의 사슬들을 부수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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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지개의 모든 색깔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둠과 자신의 무의식적인 부분의 형체 없는 뿌리들로부터 벗어나서, 하늘 속으로 날 수 있는 날개를 키워 나감으로써 지금의 그 자신을 만들어 냈다. 그의 존재 방식 자체가 바로 반역적이다 - 그가, 누군가 혹은 어떤 것에 맞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만의 참된 본성을 발견하고, 그 본성에 따라 살아가려고 굳게 결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메신저인 독수리는 그의 영혼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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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는 우리에게, 지금의 우리 모습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의 진리로 살 수 있도록 충분히 용감해지라고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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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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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그들에게는 어떤 힘이 있고, 어떤 오라(aura)가 있고, 어떤 자력(磁力)이 있으며, 살아 숨 쉬는 젊은이들을 전통의 감옥으로 부터 꺼내 줄 수 있는 하나의 카리스마(charisma)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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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사람은 노예화될 수 없다 - 그것이 어려운 점이다 - 그리고 그는 가두어질 수 없다. 내면의 그 무엇을 알게 된 천재는 흡수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는 전복(顚覆)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대중들은 심지어 그들이 비참함 속에 있게 되더라도 방해받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비참함 속에 있지만, 그들은 그 비참함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비참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의 이방인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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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낯선 이방인이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속해 있는 것 같지 않다. 어떤 조직도 그를 가둘 수 없다. 어떤 공동체도, 어떤 사회도, 어떤 국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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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속에 있는 것은 방향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고, 심지어는 두려울 수도 있다. 거기에는 붙잡을 그 어떤 것도, 방향 감각도 없으며, 앞에 어떤 가능성들과 선택들이 있는지에 대한 한 가지 힌트조차도 없다. 그러나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존재했던 것은 바로, 이 순수한 잠재력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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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이 무(無) 속에서 이완하기만 하면 된다. 말과 말 사이의 침묵 속에 빠져라. 들숨과 날숨 사이의 이 틈을 지켜보라. 그리고 그 경험의 텅 빈 순간, 하나하나를 소중히 간직하라. 신성한 그 무엇이 태어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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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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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참으로 아주 잠재력이 있는 단어들 중의 하나를 선택했다 - 수냐타(shunyata). 영어로 이 단어의 동의어인 ‘nothingness(없음)’는 그렇게 아름다운 단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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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내가 그 단어를‘no-thingness(無)’로 만들고 싶은 이유이다 - 왜냐 하면 ‘nothing(아무것도 아닌 것)’은 단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no-thingness’는 모든 가능성으로 고동친다. 그것은 잠재력이다, 절대적인 잠재력이다. 그것은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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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도 본성이며 끝도 본성이다. 그러므로 중간에서 왜 그대는 그토록 많은 소란을 만들어 내는가? 왜 중간에 그토록 걱정하고, 그토록 불안하고, 그토록 야망적이 되는가? - 왜 그러한 절망을 만들어 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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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에서 무(無)로, 그것이 여행의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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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재로는 땅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관계의 모습들이다. 이 세상의 차원에서 사랑은 기껏해야 성적인 끌림에 불과하다. 우리 대부분은 거기에서 막혀 있다. 왜냐 하면 우리의 조건화가 온갖 기대와 억압으로, 우리의 성욕에 부담을 줘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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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성적인 사랑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결코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 때에만 우리는 진정으로 그것을 있는 그대로 찬미한다 - 그것이 일어난 것을 환영하고,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때 감사함을 가지고 작별을 하라. 그리고 우리가 성숙해지면서, 우리는 성욕 너머에 존재하는 상대방의 독특한 개인성을 존중하는 사랑을 경험하기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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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우리의 파트너가 하나의 거울이 되어 우리의 보다 깊은 자아의 보이지 않는 면을 비춰 주고, 우리가 완전해지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 사랑은 기대나 필요가 아닌 자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날개들은 모든 것을 ‘하나’로 경험하는 우주적인 사랑을 향해 우리를 더 높이, 더 높이 데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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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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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 것들은 주목되어야 한다. 가장 낮은 사랑이 성(性)이다 - 그것은 육체적이다 - 그리고 사랑이 가장 고도로 정제된 것이 자비이다. 성은 사랑 아래에 있고, 자비는 사랑 위에 있다. 사랑은 그 한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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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 99퍼센트의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성욕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 그렇지 않다. 성욕은 아주 동물적이다. 그것은 분명히 사랑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단지 잠재력일 뿐, 실제 사랑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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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가 각성하게 되고, 깨어 있게 되고, 명상적이 된다면, 그 때 성은 사랑으로 변형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그대에게서 명상적인 것(meditativeness)이 전체적이고 절대적이 되면, 사랑은 자비로 변형될 수 있다. 성은 그 씨앗이다, 사랑은 그 꽃이다, 자비는 그 향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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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자비를 ‘사랑+명상’이라고 정의해 왔다. 그대의 사랑이 상대방에 대한 하나의 욕망이 아닐 때, 그대의 사랑이 단지 하나의 필요가 아닐 때, 그대의 사랑이 하나의 나눔일 때, 그대의 사랑이 거지가 아닌 황제의 사랑일 때, 그대의 사랑이 그 보답으로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고 줄 준비만이 되어 있을 때 - 순수하게 주는 기쁨만을 위해 줄 때 - 그 때 그것에 명상을 더하라. 그러면 그 순수한 향기가 퍼져 나온다. 그것이 자비이다. 자비는 가장 높은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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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를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못하도록 막아 왔던 환영(幻影) 혹은 마야(maya)의 장막이 불타 없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 불은 달구어진 격정의 불이 아니라 서늘한 ‘깨어 있음(awareness)’의 불이다. 그것이 그 장막을 태우면서 아주 섬세하고 어린아이 같은 붓다의 얼굴이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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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의 내면에서 성장하고 있는 깨어 있음은 어떤 의식적인 ‘행위’의 결과가 아니다. 또한 무언가가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당신은 지금까지 어둠 속을 더듬고 있었다는 느낌을 가졌을지도 모르지만, 그 느낌은 이제 녹아 없어지고 있다. 혹은 곧 녹아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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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자신을 가라앉혀라. 그리고 당신이 단지, 내면 깊은 곳에 영원히 침묵하고 있고 깨어 있는, 변치 않는 하나의 ‘지켜보는 자(witness)’임을 기억하라. 행동의 주변에서 지켜봄(witnessing)의 중심으로 가는 통로가 열리고 있다. 그것이 그대가 초연해지도록 도와 줄 것이며, 하나의 새로운 깨어 있음이 당신의 눈으로부터 장막을 걷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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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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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결코 지성적일 수 없다 - 오직 무심(無心)만이 지성적이다. 오직 무심만이 독창적인 것이며 급진적인 것이다. 오직 무심만이 혁명적이다 - 벌어지고 있는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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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그대에게 일종의 무감각을 가져다준다. 과거의 기억들로 짐 지워지고 미래의 투사(投射)들로 짐 지워진 채, 그대는 계속 최소치로 살아간다. 그대는 삶을 최대치로 살지 않는다. 그대의 불꽃은 아주 흐릿한 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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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대가 생각들을, 과거 속에서 쌓아 온 먼지를 떨쳐 버리기 시작하면, 그 불꽃이 일어난다 - 맑고, 깨끗하며, 살아 있는, 젊은 불꽃이……. 그대의 삶 전체는 하나의 불꽃이, 한 점의 연기도 없는 불꽃이 된다. 그것이 깨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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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한낮의 빛 속으로 나오기 위해 자신의 길에 있는 바위와 돌들의 도전에 맞서 온, 조그마한 들꽃을 보여 주고 있다. 밝은 황금빛 오라에 둘러싸인 이 들꽃은 조그마한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 들꽃은 가장 밝은 태양과 동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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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 우리에게는 하나의 선택이 있다. 우리는 화를 내고, 그 곤경들에 대해 비난할 누군가를 혹은 어떤 것을 찾으려고 할 수도 있고, 혹은 그 도전에 맞서서 성장할 수도 있다. 꽃의 삶에 대한 열정이 그 꽃을 어둠 밖으로 그리고 빛 속으로 이끌 때, 그 꽃은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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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도전들에 대항하여 싸우거나 아니면 그것들을 피하거나 거부할 필요는 없다. 도전들이 거기에 있고, 만약 씨앗이 꽃이 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그 도전들을 겪어 내야만 한다. 당신이 되고자 태어난 그 꽃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충분히 용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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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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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씨앗은 결코 꽃을 안 적이 없었다. 그리고 씨앗은, 자신이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도 못한다. 그 여행은 길다. 그리고 항상 그 여행을 계속하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 왜냐 하면, 그 여행은 알려지지 않았고 보장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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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보장될 수 없다. 그 여행의 위험은 수없이 많고 그 함정들도 많다 - 그리고 씨앗은 안전하며 하나의 단단한 핵(核) 속에 숨겨져 있다. 그러나 씨앗은 시도한다, 씨앗은 노력을 한다. 그것은 자신의 보호막인 단단한 껍질을 떨쳐 버린다, 그것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곧바로 그 싸움이 시작된다 - 흙과, 돌들과, 바위들과의 싸움이……. 그리고 씨앗은 아주 단단했다, 그리고 그 싹은 아주아주 부드러울 것이다, 그리고 위험들은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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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에게 위험은 없었다, 씨앗은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싹에게는 위험들이 많다. 하지만 그 싹은 어디로,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미지를 향해서, 태양을 향해서, 빛의 근원을 향해서 출발한다.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크지만 하나의 꿈이 씨앗을 사로잡고, 씨앗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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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똑같은 것이 인간의 길이다. 그것은 험난하다.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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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의미 있는 누군가’가 없을 때, 우리는 외로워할 수도 있고, 아니면 고독이 가져오는 자유를 즐길 수도 있다. 자신이 깊이 느낀 진리에 대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떤 호응도 얻지 못할 때, 우리는 고립되었다고, 가슴이 쓰리다고 느낄 수도 있고, 아니면 가족이나 친구들, 동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아주 강한 인간적인 욕구를 이겨 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비전(vision)이 강하다는 사실을 축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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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지금 그러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 당신의 ‘홀로 있음’에 대해, 당신은 어떤 쪽을 택하고 있는지 살펴볼 때이다. 그리고 당신이 한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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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초라한 인물은 내면으로부터 퍼져 나오는 빛으로 인해 빛나고 있다. 붓다가 인류의 영적인 삶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들 중의 하나는 “그대 자신에게 빛이 되라.”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힘주어 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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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우리 각자는 동반자나 지도자 혹은 인도자 없이도 어둠 속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안에서 계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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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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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홀로일 때, 그대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단지 외로울 뿐이다 - 그리고 ‘외로움(loneliness)’과 ‘홀로 있음(aloneness)’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대가 외로울 때, 그대는 상대를 생각하고, 상대를 그리워한다. 외로움은 하나의 부정적인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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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상대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 그대의 친구, 그대의 아내, 그대의 어머니, 그대의 연인, 그대의 남편……. 상대가 거기 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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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상대의 ‘없음(absence)’이다. 홀로 있음은 자신의 ‘있음(presence)’이다. 홀로 있음은 아주 긍정적이다. 그것은 하나의 ‘있음’, 넘쳐흐르는 ‘있음’이다. 그대는 ‘있음’으로 너무나도 가득 차서 우주 전체를 그대의 ‘있음’으로 채울 수 있으며,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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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징은 시간, 운명, 업(業, karma)을 나타내는 하나의 거대한 수레바퀴이다. 은하계들이 계속해서 원을 그리며 그 주위를 돌고 있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에는 12궁도(宮圖,zodiac)가 보인다. 바로 그 가장자리 안쪽에 주역의 8괘(卦)가 있으며, 중심에 훨씬 더 가까운 곳에, 번개의 에너지로 각각 빛나는 동서남북이 있다. 회전하고 있는 삼각형은 이 순간 위쪽을 신성을 향해 있다. 중심에는 음과 양, 남성과 여성, 창조성과 수용성을 상징하는 태극 문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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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변화 그 자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종종 말해 왔다. 생명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진화하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 이 원형의 패턴에서는 모든 정반대되는 것들이 한 가지 역할을 한다. 당신이 수레바퀴의 가장자리에 매달린다면 어지러워질 수 있다! 이것 또한 지나갈 것임을 알고 그 태풍의 중심으로 움직여 가서 이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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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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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아무런 생각 없이 스스로를 반복한다 - 그대가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하나의 수레바퀴처럼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것이, 붓다가 그것을 ‘생사의 수레바퀴’- ‘시간의 수레바퀴’- 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삶은 하나의 수레바퀴처럼 움직인다. 탄생에는 죽음이 뒤따르고, 죽음에는 탄생이 뒤따른다. 사랑에는 미움이 뒤따르고, 미움에는 사랑이 뒤따른다. 성공에는 실패가 뒤따르고, 실패에는 성공이 뒤따른다. 그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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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가, 단지 며칠 동안만 지켜볼 수 있다면, 하나의 패턴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어느 화창한 아침에 그대는 너무나 좋고, 너무나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날, 그대는 너무나 지루하고, 너무나 죽어 있는 것 같아 자살할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 그대는 너무나 삶으로 충만하고 너무나 지복스러워서, 그대가 깊은 감사의 마음이었던 것에 대해, 신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커다란 불평이 존재하고, 그대는 사람이 왜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되지만, 그대는 그 패턴을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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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대가 그 패턴을 보게 되면, 그대는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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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에서 빨간색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 카드의 주제가 에너지와 힘과 강인함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환한 빛이 카드 속 인물의 태양 신경총(명치 부분) 즉 힘의 센터로부터 퍼져 나오고 있으며, 카드 인물의 자세는 활력과 확고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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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종종 ‘이 정도면 충분해.’하는 지점에 이른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를 제한시키는 부담감과 구속을 벗어 던지기 위해 무언가를,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 심지어 그것이 나중에 실수였던 것으로 드러난다 할지라도.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생명 에너지 바로 그 자체를 질식시키고, 무기력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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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금 당신이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느끼고 있다면, 당신의 에너지가 흐르지 못하도록 막아 왔던, 그 낡은 방식들과 한계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산산조각 내도록 당신 자신을 허락하라. 그렇게 하면 당신은, 이 도약이 당신의 삶에 가져다 줄 수 있는 활력과 힘에 틀림없이 놀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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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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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breakdown)’를 ‘도약(breakthrough)’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스승의 역할의 전부이다. 심리 요법사는 그대를 일시적으로 고칠 뿐이다. 그것이 그의 역할이다. 그는 그대를 변형시키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초(超)심리학’, 붓다의 심리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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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으로 붕괴를 겪는 것은 삶의 가장 커다란 모험이다. 그것은 가장 커다란 모험이다. 왜냐 하면 그 붕괴가 하나의 도약이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붕괴는 실제로 도약이 되지만 이러한 것들은 보장될 수 없다. 그대의 혼돈은 매우 오랜 것이다 - 너무나 많은 삶들을 그대는 혼돈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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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혼돈은 두껍고 조밀하다. 그것은 그 자체로 거의 하나의 우주이다. 따라서 그대가 그대의 작은 능력을 가지고 그 속으로 들어갈 때, 물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 위험을 직면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결코 통합된 적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결코 ‘나누어질 수 없는(indivisible)’ 하나의 ‘개인(individual)’이 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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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 혹은 명상은, 그대가 균형 잡히고 단련되고 깨어 있는 채로 그 혼돈을 겪도록,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겪도록 도와주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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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멀지 않다. 그러나 그대가 새벽에 도달하기 전에 어두운 밤은 통과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밤은 더 어두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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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인물은 새로이 태어나고 있고, 땅에 한정되어 있는 그의 뿌리들로부터 나와 무한 속으로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를 키워 나가고 있다. 이 인물의 몸 주위에 있는 기하학적인 모양들은 그에게 동시에 가능한 삶의 많은 차원들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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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형은 물질적인 것, 드러난 것, 알려진 것을 나타낸다. 원은 드러나지 않은 것, 영혼, 순수한 공간을 나타낸다. 그리고 삼각형은 드러난 것, 드러나지 않은 것, 그리고 이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우주의 세 가지 본성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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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에게는 깊은 곳에서부터 높은 곳까지, 그 모든 차원 속에서 삶을 볼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주어져 있다. 그것들은 공존한다. 그리고 우리가, 어둠과 어려운 것들이 빛과 쉬운 것들만큼이나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으로부터 알게 될 때, 그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한 아주 다른 시각을 갖기 시작한다. 삶의 모든 색깔들이 우리를 꿰뚫도록 허용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통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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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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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궁극에 대해 활짝 열릴 때, 곧바로 그것이 그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그대는 더 이상 하나의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그대는 초월한 것이다. 그대의 통찰이 존재 전체의 통찰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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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대는 더 이상 분리되어 있지 않다 - 그대는 그대의 뿌리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 보통 모든 사람들은, 뿌리가 없이 움직이고 있다. 어디에서 그들의 가슴이 계속 에너지를 받고 있는지 모르는 채, 누가 그들 안에서 계속 호흡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그들 내면에서 흐르고 있는 삶의 정수(精髓)를 모르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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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몸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 아니다 - 그것은 모든 이중성에 대해 초월적인 그 무엇이다. 그것은 ‘바가바트(bhagavat - 시방(十方)의 바가바트’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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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내면의 존재는, 그것이 열릴 때, 먼저 두 방향을, 높이와 깊이를 경험한다. 그리고 나서 서서히, 서서히, 이것이 그대에게 자리 잡힌 하나의 상황이 되면서, 그대는 주위를 둘러보고 나머지 팔방(八方) 모두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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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단 그대가, 그대의 높이와 그대의 깊이가 만나는 그 지점에 도달하면, 그 때 그대는 바로 우주의 주변까지도 둘러볼 수 있게 된다. 그 때 그대의 의식은 시방 모두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길은 지금까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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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 중앙에 있는 인물은 변형의 상징들(환영(幻影)을 베어 버리는 검, 허물을 벗어 자신을 다시 젊게 만드는 뱀, 끊어진 한계들의 사슬, 이중성을 초월하는 음/양의 상징)을 들고, 무한 공간의 거대한 꽃, 맨 위에 앉아 있다. 그 손들 중 하나는 무릎 위에 놓여 있으며, 열려 있고 수용적이다. 다른 한 손은 아래로 향해 있고, 우리가 편안할 때 찾아오는 침묵을 상징하는 ‘잠자는 얼굴’의 입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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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깊은 내맡김(let-go)의 때이다. 어떤 고통, 슬픔, 어려움이든, 그저 거기 존재하게 내버려 두고, 그것이 ‘사실임(facticity)’을 받아들여라. 그것은 마치 고타마 붓다가 수년 동안의 구도 후에 마침내 그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했을 때의 경험과 너무나 비슷하다. 바로 그 날 밤, 그는 깨닫게 되었다. 변형은 죽음처럼 때가 되면 찾아온다. 그리고 변형은 죽음처럼 당신을 하나의 차원에서 또 다른 차원 속으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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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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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禪師)는 단순히 하나의 선생이 아니다. 모든 종교들에는 선생들만 있다. 그들은 그대가 모르는 주제들에 대해서 가르치며 그대에게 믿으라고 한다. 왜냐 하면 그런 체험들을 객관적인 현실로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 선생 또한 그것들을 지금껏 알지 못했다 - 그는 그것들을 믿어 왔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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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믿는 자들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신앙이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믿음, 불신, 의심, 이성, 마음을 떨쳐 버리고, 단지 경계들이 없는 그들의 순수한 존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대담한 영혼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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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엄청난 변형을 가져온다. 따라서 다른 것들은 철학에 열중하지만, 선은 변형에, 변용(變容)에 열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진정한 연금술이다. 선은 그대를 저질의 금속에서 황금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그대의 추론이나 지적인 마음이 아니라, 그대의 다정한 가슴으로 선의 언어가 이해되어야만 한다. 혹은 그저 듣기만 하라,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신경 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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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대의 삶 전체 동안 그대를 피해 다녔던 그것을, 그대가 알게 되는 하나의 순간이 갑자기 찾아온다. 갑자기, 붓다가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이라고 불렀던 것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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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합의 이미지는 ‘신비의 합일(unio mystica)’이며, 서로 반대되는 것의 융합이다. 지금은 이전에 체험되어진 삶의 이중성들 사이에 교감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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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대립하는 밤, 빛을 억압하는 어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은 합일된 전체를 창조하기 위해, 함께 일하고 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그것과 반대되는 것으로 바뀌며, 가장 깊은 곳에서는 그 반대쪽의 씨앗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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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와 백조는, 비행(飛行)과 위엄을 나타내는 두 존재들이다. 독수리는 힘과 홀로 있음의 화신이다. 백조는 공간과 순수의 화신으로, 감정들의 요소 위에서 부드럽게 떠다니기도 하고, 그 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그리고 백조는 자신의 완벽함과 아름다움 속에서 전적으로 만족해하고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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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독수리와 백조, 남성과 여성, 불과 물, 삶과 죽음의 합일이다. ‘통합’ 카드는 자기 창조, 새로운 삶, 그리고 신비의 합일 혹은 연금술로 알려진 것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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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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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인간 안에 있다. 갈등이 그 안에서 풀리지 않는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풀릴 수가 없다. 정치적인 술수가 그대 안에 있다. 그것은 마음의 두 부분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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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아주 작은 다리가 존재한다. 만약 그 다리가 어떤 사고(事故)로 인해 심리적인 결함이나 어떤 다른 것으로 인해 무너지게 될 때, 그 사람은 분열된다, 그 사람은 두 사람이 된다. 만약 그 다리가 무너지면 - 그 다리는 매우 약하다 - 그 때 그대는 둘이 된다, 그대는 두 사람처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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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그대는 아주 다정하고 아주 아름답다. 저녁에 그대는 아주 화가 나 있고 완전히 다르다. 그대는 그대의 아침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대가 어떻게 기억할 수 있겠는가? 또 다른 마음이 작용하고 있었다 - 그리고 그 사람이 두 사람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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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다리가 너무도 강해지면 둘로서의 두 마음은 사라지고 하나가 된다. 그 때 통합이, 그 때 결정화(結晶化)가 일어난다. 구제프(gurdjieff)가 ‘존재의 결정화’라고 말하곤 했던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러한 두 마음의 하나됨, 내면의 남성과 여성의 만남, 음과 양의 만남, 오른쪽과 왼쪽의 만남, 논리와 비(非)논리의 만남,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만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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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우리에게, 한 마리 사자에 관한 오래 된 선의 일화를 일깨워 주고 있다. 양에 의해 키워진 사자는 자신도 당연히 양이라고 생각하며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든 사자가 양 떼 속에 있던 이 사자를 보고, 그를 붙잡아 연못으로 끌고 가 그의 모습을 비춰 주자,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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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사자와 같다. 우리 자신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의 직접적인 체험으로부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외부로부터 강요된 하나의 ‘인격(personality)’이 내면에서 성장했어야 할 개인성(individuality)을 대신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의식하지도 못하는 양 떼 속의 또 한 마리의 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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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이며, 우리 자신에 대해 믿으라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조건화되어 왔던, 그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일 때이다. 춤추고, 뛰고, 조깅을 하고, 지버리쉬(의미 없는 소리)를 하라 - 내면의 잠자고 있는 사자를 깨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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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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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가 그대의 인격을 떨쳐 버리지 않는다면, 그대는 그대의 개인성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성은 존재에 의해 주어진 것이며, 인격은 사회에 의해 강요된 것이다. 인격은 사회적인 편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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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개인성을 견딜 수 없다. 왜냐 하면 개인성은 한 마리 양처럼 따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성은 사자의 질(質)을 가지고 있으며 사자는 홀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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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군중 속에 있으면 편안하게 느끼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항상 군중 속에 있다. 군중 속에 있으면 더욱 보호받고 있다고 안전하다고 느낀다. 만약 누군가가 공격을 하면, 군중 속에서는, 그대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홀로라면? - 오직 사자만이 홀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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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대들 모두는 한 마리 사자로 태어나지만, 사회는 계속 그대를 조건화시키고 그대의 마음을 한 마리 양으로 짜 맞춘다. 그것이 그대에게 하나의 인격을, 편안하고 좋은, 아주 편리하고 아주 순종적인 인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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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자유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노예들을 원한다. 사회는 노예만을 원한다. 왜냐 하면 모든 기득권들은 순종을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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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불태워지고 파괴되고 폭파되고 있는 탑을 보여 주고 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그 곳에서 뛰어내리고 있다.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뒤에는 지켜보는 의식을 상징하는 투명한, 명상을 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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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마치 땅이 당신 발밑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약간 떨린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안전하다는 느낌이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어떤 거라도 붙잡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내면의 지진은 꼭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 만약 당신이 그것을 허용한다면, 당신은 더 강력한 파괴에서도 빠져 나올 것이며, 새로운 경험들이 더욱 많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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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후의 땅은 다시 비옥해지고, 폭풍 후의 공기는 맑다. 마치 그것이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그 파괴를 초연함을 가지고 지켜보도록 노력하라. 그것에 가까이 감으로써 그 과정에 ‘예’라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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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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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 서서히, 서서히 하는 것을 한 번의 제대로 된 스승의 소리침이 해낸다. 제자가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 그런 상황 속에서 예기치 않게, 그리고 스승은 펄쩍 뛰고, 소리치고(喝) 혹은 그를 때리고(棒) 혹은 문 밖으로 그를 내던지고 혹은 그의 몸 위에 올라탄다…… 이런 방법들은 결코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그것은 순전히 마조(馬祖)의 아주 창조적인 재능이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들을 깨닫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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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그것은 너무나 즐거워 보인다. 그는 이층짜리 집에서, 한 사람을 창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그 사람은 무엇에 대해 명상해야 할지 물어 보기 위해서 왔다. 그리고 마조는 그를 내던졌을 뿐만 아니라 바로 뛰어내려서 그를 덮쳐서 그의 가슴 위에 앉아서 “알겠는가?!”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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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불쌍한 친구는 “예.”라고 말했다 - 왜냐 하면 만약 “아니오.”라고 말했다가는 그가 때리거나, 어떤 다른 일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 그의 몸이 골절되고, 마조가 그의 가슴 위에 앉아서 “알아들었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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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것을 알아들었다. 왜냐 하면 그것은 너무도 갑작스럽게 느닷없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 그는 결코 그렇게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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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과 함께, 침묵하고 있는 거울 같은, 별이 가득한 밤의 수용성이 아래쪽에 있는 안개 낀 호수에 비춰지고 있다. 하늘에 있는 얼굴은 깊은 명상 속에 있다. 그녀는 깊이와 평화, 이해를 가져다주는 밤의 여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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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너무도 소중한 때이다. 당신은 내면에서 휴식하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내면의 침묵과 우주의 침묵이 만나는 그 지점까지의 깊이를 재보기도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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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것도 가야 할 곳도 없다. 당신 내면의 침묵의 질(質)이,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스며든다. 그것은 모든 소음들과 세상일들에 익숙해져 있는 몇몇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절대로 신경 쓰지 말라. 당신의 침묵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라. 혹은 그저 당신의 홀로 있음을 즐겨라. 지금은 당신의 의식을 되찾을 때이다. 이러한 순간들 속에서, 당신에게 찾아오는 이해와 통찰은 나중에 당신 삶의 좀 더 외적인 면에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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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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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the whole)의 에너지가 그대를 사로잡았다. 그대는 사로잡혀 있다, 그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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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 침묵이 그대 안으로 스며들면서, 그대는 침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그것은 고타마 붓다가 체험했던 것과 똑같은 침묵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자나 보리달마 혹은 남전이 체험했던 것과 똑같은 침묵이다. 침묵의 맛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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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변하고 세상은 계속 변하지만, 침묵의 체험 그 기쁨은 똑같은 채 남아 있다. 그것은 그대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결코 죽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 그것은 그대가 바로, 그대의 존재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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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양 손이 여성의 성기, 우주의 어머니의 통로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안에는 많은 이미지들, 다른 시간들에서 온 얼굴들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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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전생들에 대한 공상(空想)에 잠기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그것은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진짜 핵심은 하나의 끝없이 반복되는, 무의식적인 행동 속에 우리를 가두는 순환 속에서, 우리의 삶들의 업(業)의 패턴들과 그 뿌리들을 보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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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에 있는 두 마리의 무지개 색 도마뱀은 ‘앎(knowing)’과 ‘알지 못함(not-knowing)’을 상징한다. 그들은 무의식의 수호자이며,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산산조각 나 버릴 수도 있는 하나의 비전에 대해, 우리가 확실히 준비될 수 있도록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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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존재의 영원성을 일별(一瞥)하는 것은 하나의 선물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들 속에서, 업의 작용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기상나팔이다. 당신의 삶 속에서의 일들은, 당신 자신의 영혼의 여정만큼이나 오래 된 하나의 패턴을 당신에게 보여 주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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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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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속에서 충분히 명상을 해 왔고, 죽음이 가져오는 그 어둠과 싸울 만큼 충분한 명상적인 에너지를 창조해 왔을 때에만, 그 아이는 의식적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단순히 망각(忘却) 속으로 사라지고, 그리고 갑자기 하나의 새로운 자궁을 발견한다. 그리고 예전의 몸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린다. 하나의 불연속성이 존재한다. 이 어둠, 이 무의식이 그 불연속성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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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은 이러한 장벽들을 뚫기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 그리고 일만 년에 걸친 작업은 헛되지 않았다. 누구나가 그 전생 혹은 많은 전생들까지 꿰뚫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대는 그대의 명상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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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가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대는 다른 생(生)으로 가는 문을 발견할 수 없다. 둘째로, 그대는 더 깊이 명상 속에 있어야만 한다. 왜냐 하면 만약 그대가 다른 생으로 가는 문을 발견하면, 수많은 일들이 홍수처럼 마음 속으로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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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삶을 감당하는 것조차도 충분히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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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노인은 어린아이와 같은 기쁨을 세상에 퍼뜨리고 있다. 그 자신에 대해, 그리고 삶이 가져다 준 것에 대해 편안해하는 듯한, 우아함의 느낌이 그를 감싸고 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 위에 있는 사마귀와 마치 가장 절친한 친구인 것처럼, 즐거운 교감을 나누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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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위에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분홍색 꽃들은 내맡김과 이완, 그리고 감미로움의 시간을 나타낸다. 그 꽃들은,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며, 그가 지닌 특성들에 대한 하나의 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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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깊은 체험으로부터 나오는 순수는 ‘어린아이와 같으며(childlike)’, ‘유치하지(childish)’ 않다. 어린아이들의 순수는 아름답지만 무지하다. 그 어린아이가 자라서, 세상이 위험하고 위협적인 곳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면서, 그 순수는 불신과 의심으로 대치될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누린 삶에서 나오는 순수는 지혜와 끊임없이 변하는 삶의 경이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질(質)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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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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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안에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대의 이름, 신분, 모든 것들이. 왜냐 하면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대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선(禪)은 말한다. 만약 그대가 지식을 떨쳐 버리면, 만약 그대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주어진 모든 것을 떨쳐 버리면, 그대는 그대의 존재에 완전히 다른 질(質) - 순수 - 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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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페르소나(persona)’, 인격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될 것이며, 또한 그대의 순수를 부활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대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고 다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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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나비는 바깥,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그것, 그리고 실재하지 않는 하나의 환영(幻影)인 그것을 상징한다. 나비 뒤에는 ‘의식’의 얼굴이 있다. 그 얼굴은 끝없이 계속되는 그것에 대하여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두 눈 사이의 공간이 열렸으며, 그 공간은 영적인 개화(開花)의 연꽃과 떠오르는 각성의 태양을 드러내고 있다. 그 내면의 태양이 떠오름으로 해서 명상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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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우리에게, 실재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바깥을 보지 말고, 내면을 보라고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가 외부적인 것들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종종 판단들에 휘말려들게 된다. 이건 좋아, 이건 나빠, 나는 이걸 원해, 나는 저건 원하지 않아. 이러한 판단들은, 우리가 계속 우리의 환영들, 우리의 졸음, 우리의 낡은 습관들과 방식들 안에 갇혀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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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주장하는 당신의 마음을 떨쳐 버리고, 안으로 움직여 가라. 당신은, 꿈과 실재의 차이가 이미 알려져 있는 그 곳에서, 당신 자신의 가장 깊은 진리 속에서 이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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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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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실재 사이에는 유일한 차이가 있다. 실재는 그대가 의심하도록 허용하지만, 꿈은 그대가 의심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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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은, 인류에게 가장 커다란 축복들 중의 하나이다. 종교들은 지금까지 적(敵)들이었다. 왜냐 하면 그들은 바로 그 의심의 뿌리들을 잘라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해 온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왜냐 하면 그들은, 그들이 설교해 온 특정한 환영(幻影)들을 사람들이 믿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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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타마 붓다와 같은 사람들이 그토록 끈질기게 그대의‘지켜보는 자아(自我)’ 그리고 그대의 ‘각성’을 제외한 존재 전체가 단지 덧없을 뿐이고, 꿈들이 이루어진 것과 똑같은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해 왔는가? 그들은, 이 나무들이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 기둥들이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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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illusion)’이라는 단어로 인해 오해하지 말라. 그것은 ‘환영’이라는 단어로 옮겨져 왔지만, ‘환영’은 적절한 단어가 아니다. 환영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재는 존재한다. 마야(maya)는 바로 그 사이에 있다. 그것은 거의 존재한다. 일상적인 활동들에 관한 한, 그것은 실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의미에서, 그대의 깨달음(illumination)의 절정에서,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 환영(幻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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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조각 그림 맞추기의 마지막 조각이 제자리, 제3의 눈의 자리, 내면의 지각(perception)의 자리에 놓여지고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삶의 흐름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의 완성에 이르게 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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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그 그림 전체를,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의 주목을 끌어 왔던 그 작은 조각들 모두가 맞춰진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그 마무리 과정 속에서 우리는, 그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절망할 수도 있고 혹은 그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삶이 ‘끝’과 새로운 ‘시작’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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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무엇이든, 당신의 시간과 노력을 빼앗아 왔던 것이 지금 끝나 가고 있다. 그것을 끝마치면서, 당신은 새로운 무언가 시작될 수 있는 공간을 깨끗하게 치워 놓을 것이다. 이 공백을, 오래 된 것의 끝과 새로운 것의 찾아옴 이 두 가지 모두를 축하하는 데 이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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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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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완결 짓지 않는 것, 이것이 선의 방식이다. 이것은 이해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방법론이다.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그 말을 완성할 하나의 기회를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대답들은 불완전하다. 스승은 그저, 그대에게 하나의 방향을 가리켜 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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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그 한계에 이르게 될 때쯤이면, 그대는 무엇이 그대로 남아 있을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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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만약 누군가가 선을 지적(知的)으로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면, 그는 실패할 것이다. 선은,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아니라, 대답 이상의 그 무엇이다. 그것은 바로 그 실재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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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佛性)은 저 멀리에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 바로 그대의 의식이 불성이다. 그리고 그대의 의식은 이러한 세상을 구성하는 것들을 지켜볼 수 있다. 세상은 끝날 것이지만, 그 거울은 남아서 ‘없음(nothing)’을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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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서 스승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스승이 아닌, 자기 자신의 스승이다. 그의 말과 몸짓 하나하나가 그의 깨달은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그에게는 개인적인 목표들도 없고, 지금 그대로가 아닌, 어떤 다른 방식으로 어떤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욕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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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제자들은 그를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현존(現存)을 흡수하고, 그가 보여 주는 예(例)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그의 주위에 모인다. 그의 눈 속에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진리가 비춰진 것을 발견하고, 그의 침묵 속에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존재의 침묵 속으로 보다 쉽게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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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제자들을 이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자신에게 나눌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들을 환영한다. 독특한 개인 각자가, 그 혹은 그녀 자신의 빛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에너지장(場)을, 그들은 함께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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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그런 스승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대는 축복받은 것이다. 만약 발견할 수 없다면 계속 찾아보라. 선생들에게서 그리고 장차 스승이 될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계속 나아가라. “차레베티(charaiveti), 차레베티.”라고 고타마 붓다는 말했다. 계속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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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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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을 가르칠 방법은 없다. 그것은 경전들을 넘어선, 단어들을 넘어선 하나의 전이(轉移)이다. 그것은 하나의 전이이다. 그것은 그대 안의 에너지를 일깨우는 에너지이다. 그것은 일종의 동시성(同時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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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크나큰 사랑을 가지고, 크나큰 신뢰를 가지고, 열린 가슴을 가지고 스승에게 다가가야만 한다. 그대는 그대가 누구인지 각성하고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각성하고 있으며, 그대가 누구인지 각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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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는 자신이 나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각성하고 있지 않다. 그대들은 애벌레들이다, 보살(菩薩)들이다. 모든 애벌레는 보살이며, 모든 보살은 애벌레이다. 보살이란, 한 마리 나비가 될 수 있는 사람, 하나의 붓다가 될 수 있는 사람, 씨앗 속에서 본질 속에서 하나의 붓다인 사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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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제자 관계는 애벌레와 나비 사이의 관계이며, 애벌레와 나비 사이의 우정이다. 나비는 애벌레가 한 마리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 논리적인 방법은 없다. 그러나 나비는 그 애벌레 안의 열망을 자극해 줄 수 있다. 그것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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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선사는 불의 에너지를 하나의 에너지원(源)으로 계발해서, 파괴보다는 창조를 위해 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열정의 불들을 터득한 사람들은 열정의 불들을 억압하거나, 그 불들이 파괴적이 되고 균형을 잃어버리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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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열정의 불을 터득한 사람들의 그 이해를 깨닫고, 그 이해를 함께 나누고자 우리를 초대한다. 그는 너무도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내면의 자신과 바깥세상에서의 자신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해와 통합이라는 선물을, 그의 존재의 중심에서 나온 창조의 빛이라는 선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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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왕 카드는, 우리가 지금 맡은 일이 성숙함에서 나오는 이해를 통해서 우리 자신의 삶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풍부함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기술이든, 당신 자신의 인생에서 배운 어떤 것이든 사용하라. 지금은 당신 자신을 표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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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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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창조자가 있다. 창조자의 한 가지 유형은 대상들을 가지고 작업한다. 시인, 화가, 그들은 대상들을 가지고 작업한다, 그들은 사물들을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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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자의 또 한 가지 유형은 신비가(mystic)로서 자기 자신을 창조한다. 그는 대상(object)들을 가지고 작업하지 않고, 주체(subject)를 가지고 작업한다. 그는 자기 자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작업한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창조자이며 진정한 시인이다. 왜냐 하면 그는 자기 자신을 하나의 걸작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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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대의 내면에 하나의 숨겨진 걸작을 지니고 있지만, 그대가 그 중간에 서 있다. 그저 옆으로 비켜서라. 그러면 그 걸작이 드러날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걸작이다. 왜냐 하면 신은 결코 걸작보다 못한 것은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많은 생(生)들 동안 감춰진 걸작을 지니고 다니지만,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누군가가 되기 위해 표면에서 애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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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되려는 생각을 떨쳐 버려라. 왜냐 하면 그대가 이미 하나의 걸작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개선되어질(improved) 수 없다. 그대는 그것에 도달하고, 그것을 알고, 그것을 깨닫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신이 직접 그대를 창조했다, 그대는 개선되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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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여왕은 너무나 풍요롭고, 너무나 여왕답기 때문에 나누어 줄 여유가 있다. 재산 목록들을 작성하거나, 나중을 위해 그 무엇을 따로 남겨 둘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보물들을 무한정 나누어 주며, 풍요로움, 비옥함,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빛을 함께하고자 모든 이들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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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 카드를 뽑았다면, 그것은 당신 역시 당신의 사랑, 당신의 기쁨, 그리고 당신의 웃음을 나눌 기회가 있는 상황 속에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나눔 속에서 당신은, 자신이 훨씬 더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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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야 할 필요도 혹은 어떤 특별한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당신은 소유욕이나 집착 없이 관능성(sensuality)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창조성의 충족감을 똑같이 느끼면서, 아이 혹은 하나의 새로운 계획을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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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함께 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즐겨라, 그 속에 그대 자신을 완전히 가라앉혀라. 그리고 그대 안에서, 그리고 그대 주위에서 풍요로움이 넘쳐흐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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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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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위쪽으로 네 번째 센터 - 그것이 가슴이다 - 까지 움직임에 따라, 그대의 삶 전체는 하나의 사랑의 나눔이 된다. 세 번째 센터는 사랑의 풍요로움을 창조해 냈다. 명상 속에서, 세 번째 센터에 도달함으로써 그대는 사랑으로, 자비로 너무도 넘쳐흐르게 되고, 그대는 나누고 싶어진다. 그것이 네 번째 센터 가슴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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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보통 세상 사람들조차도 사랑이 가슴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들에게 사랑은 그저 들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들은 그 말을 들어왔지만 그것을 알지 못한다. 왜냐 하면 그들은 결코 그들의 가슴에 도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상을 하는 사람은 마침내 가슴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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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의 존재의 중심 - 세 번째 센터 - 에 도달하게 될 때, 그의 가슴을 치고, 가슴을 여는, 그러한 힘으로 인해 갑자기 사랑의 폭발, 자비, 기쁨, 지복스러움, 축복이 그의 안에서 생겨난다. 가슴은 그대의 일곱 개의 센터들의 한가운데에 있다 - 세 개의 센터가 아래에 있고, 세 개의 센터는 위에 있다. 그대는 정확히 가운데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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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인물은 화살 모양을 하고 있으며,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처럼 단 하나의 뾰족한 점을 가지고 움직인다. 그는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거의 순수한 에너지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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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강렬함은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기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전속력으로 차를 몰게 만드는 광적인 에너지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종류의 강렬함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수평적인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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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기사로 상징되는 강렬함은 현재 순간이라는 수직적인 세계 - ‘지금’이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이며, ‘여기’가 유일한 공간이라는 인식 - 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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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불의 기사의 강렬함을 가지고 행동할 때, 그것은 당신 주위의 물에 파문을 일으키기가 쉬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있음으로 해서, 자신의 기분이 더 좋아지고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위협을 느끼거나 괴롭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 바로 지금, 아무도 당신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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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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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말한다. “위대한 말들, 위대한 가르침들을 그대의 최대의 적(敵)으로 생각하라. 그것들을 피하라. 왜냐 하면 그대가 그대 자신의 근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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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하나의 추종자나 하나의 모방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대는 하나의 독창적인 개인이 되어야만 한다. 그대는 안내자 없이, 안내해 주는 경전들 없이, 그대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핵을 발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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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캄캄한 밤이지만, 강렬한 탐구의 불로 인해 그대는 일출(日出)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강렬한 탐구로 불타올랐던 사람은 누구나 일출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믿기만 한다. 믿는 사람들은 종교적이지 않으며, 그들은 믿음으로써 위대한 종교의 모험을 피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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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리가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삶은 우리에게 즐길 수 있는 더욱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줌으로써 이에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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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 속의 여성은 번데기에서 빛의 밝은 희망 속으로 나온 한 마리 나비처럼 살아 있는 기쁨을 축하하고 있다. 그녀는, 해변에서 조개껍질들을 줍고, 모래성을 쌓으면서도, 그 다음 순간 파도가 밀려와서 그것을 씻어 가 버릴 것을 걱정하지 않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녀는 삶이 하나의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바로 지금 자신이 맡은 광대 역할을 당황스러움이나 가식 없이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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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시종이 당신의 삶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당신이 신선함과 새로움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하나의 신호이다. 경이로운 그 무엇이 지금 막 지평선 위에 있고, 당신은 두 팔 벌려 그것을 환영하는 데 적절한 장난 끼 있는 순수함과 명료함이라는 질(質)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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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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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삶을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하나의 놀이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그대 가슴에 있는 모든 짐들이 사라진다.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 - 모든 것이 사라진다. 사람은 아주 가벼운 무게로, 또는 거의 무게 없이 살기 시작한다. 너무도 무게가 없어지면 사람은 열린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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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가장 큰 기여는, 그대에게 심각한 사람에 대한 하나의 대안을 준다는 것이다. 심각한 사람이 세상을 만들어 왔다, 심각한 사람이 모든 종교를 만들어 왔다. 그는 모든 철학들, 모든 문화들, 모든 도덕들을 만들었다. 그대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심각한 사람의 창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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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심각한 세상에서 손을 뗐다. 선은 위대한 스승들조차도 어린아이들처럼 행동하는 아주 장난스럽고, 웃음으로 가득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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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깊이 묻혀 있던 과거의 상처들이, 치유가 가능한 상태로 또 치유될 준비를 하고 표면으로 올라오고 있는 때이다. 이 카드의 인물은 벌거벗은 채, 상처 입기 쉬운 채로 존재의 다정한 손길에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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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몸 주위의 오라는 빛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이완의 질(質)과 사랑과 보살핌이 그의 투쟁과 괴로움을 녹여 버리고 있다. 빛의 연꽃들이 그의 육체와, 우리 각자를 둘러싸고 있다고 치유가들이 말하는 미묘한 에너지체(subtle energy body) 주위에 나타나 있다. 이 미묘한 층들 안에, 치유의 무늬 혹은 수정이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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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물의 왕’의 치유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더 이상 숨지 않는다. 이런 열려 있음과 받아들임의 태도 속에서 우리는 치유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또한 건강하고 온전해지도록 도와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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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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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그대는 그대의 상처를 지니고 다닌다. 에고 때문에 그대의 존재 전체는 하나의 상처이다. 그리고 어느 곳에나 그대는 그것을 지니고 다닌다. 아무도 그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에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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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그대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적극적으로 기다리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그 자신의 상처를 보호하느라 바쁘다. 누가 그럴 에너지가 있겠는가? 그러나 여전히 그것이 일어난다. 왜냐 하면 그대는 상처 입을 준비가 너무나 잘 되어 있어서, 바로 그 경계에서 어떤 것이든지 오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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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도인(道人)을 건드릴 수 없다. 왜인가? - 왜냐 하면 건드려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상처가 없다. 그는 건강하고, 치유되어 있고 온전하다. ‘whole(온전한)’이라는 단어는 아름답다. ‘holy(신성한)’라는 말도 ‘whole’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그는 온전하며 치유되어 있고, 신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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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상처를 각성하라. 그것이 자라도록 돕지 말고, 그것이 치유되게 하라. 그리고 그대가 그 뿌리까지 움직일 때에만 그것은 치유될 것이다. 머리가 줄어들수록 상처는 더 많이 치유될 것이다. 머리가 없다면 상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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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없는 삶을 살아라. 하나의 전체적인 존재로서 움직이고, 일들을 받아들여라. 24시간 동안만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시도해 보라. 누군가 그대를 모욕한다, 그것을 받아들여라, 반응하지 말라.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라. 갑자기 그대는 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하나의 에너지가 그대 안에서 흐르는 것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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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성은 물과 감정들의 여성적이고, 수용적인 질(質)을 의미한다. 이 카드에 있는 여성의 두 팔은 받아들이기 위해 위쪽으로 올려 져 있으며, 그녀는 완전히 물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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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성에게는 머리도 없고, 자신의 순수한 수용성을 가로막는 바쁘고 공격적인 마음도 없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채워지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우고 넘쳐흘러서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인다. 그녀로부터 나오는 연꽃무늬는, 우리가 우주와 조율되어 있을 때, 분명하게 드러나는 우주의 완벽한 조화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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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여왕은 우리에게 어떤 기대나 요구도 없이, 삶이 가져다주는 그 모든 것에 대한 감사와 무한의 시간을 가져다준다. 의무감도, 칭찬이나 보답에 대한 생각도 중요하지 않다. 민감성, 직관 그리고 자비가 지금 바깥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계속해서 서로로부터 분리시키고, 전체로부터 분리시키는, 그 모든 장애물들을 녹여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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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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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것(listening)’은 신의 사원으로 들어가는 기본적인 비밀들 중 하나이다. 듣는 것은 수동성을 의미한다. 듣는 것은 그대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 오직 그 때에만 그대는 들을 수 있다. 그대가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때, 그대는 그대 자신을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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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가 그대 자신을 잊어버릴 수 없다면, 그대는 결코 듣지 못한다. 만약 그대가 그대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자기를 의식하고 있다면, 그대는 듣고 있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 - 그대는 듣지 않는다. 그대는 머리를 끄떡일 수도 있다. 그대는 때때로 “예.” 그리고 “아니오.”라고 말할 수도 있다 - 그러나 그대는 듣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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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들을 때, 그대는 그저 하나의 통로, 하나의 수동성, 하나의 수용성, 하나의 자궁이 된다. 그대는 여성적이 된다. 그리고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성적이 되어야만 한다. 그대들은 공격적인 침입자들로서, 정복자들로서 신에 도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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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신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혹은 이렇게 말하는 편이 더 낫겠다. 그대가 수용적일 때, 하나의 여성적인 수용성일 때에만, 신이 그대에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대가 음(陰)이, 하나의 수용성이 될 때, 그 문은 열려 있다. 그리고 그대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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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것은 수동적이 되기 위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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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밧줄 없이 번지 점프를 하는 사람이 될 순간이다! 그리고 물의 기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도, 어떤 조건이나 숨겨진 안전그물도 없는 바로 이러한 전적인 신뢰이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지만, 만약 우리가 뛰어내려서 미지 속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굉장한 흥분의 느낌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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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양자 도약(quantum leap)’의 수준까지 신뢰를 가져갈 때, 우리는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거나 준비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래, 지금 나는, 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고 믿어. 이제 일들을 정리하고, 여행 가방을 싸서 가져가면 돼.”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다. 우리는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거의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뛰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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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도약이며, 텅 빈 하늘을 자유 낙하할 때의 전율이다. 이 카드는 저쪽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한 가지 힌트를 주고 있다 - 부드럽고, 환영하며, 아름다운 핑크빛, 장미 꽃잎들, 과즙이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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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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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빼앗길 것들 때문에 그대의 삶을 낭비하지 말라. 삶을 신뢰하라. 만약 그대가 신뢰한다면, 오직 그 때에만 그대는 그대의 지식을 떨쳐 버릴 수 있고, 오직 그 때에만 그대는 그대의 마음을 한쪽으로 치워 놓을 수 있다. 그리고 신뢰와 함께, 굉장한 그 무엇이 활짝 열린다. 그 때 이 삶은 더 이상 평범한 삶이 아니다, 그것은 신(神)으로 가득 차고 넘쳐흐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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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순수하게 되고 그 벽들이 사라져 버릴 때, 그대와 무한 사이에 다리가 놓인다. 그리고 그대는 속임을 당하지 않는다. 그대로부터 빼앗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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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부터 빼앗길 수 있는 것은 가지고 있을 만한 가치가 없다. 그리고 그대로부터 빼앗길 수 없는 것이라면 왜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는가? - 그것은 빼앗길 수 없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 그대는 그대의 진정한 보물을 잃어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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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에 그려진 새는 새장처럼 보이는 곳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문은 없다. 그리고 실제로 그 창살들은 사라져 가고 있다. 그 창살들은 하나의 환영(幻影)이었다. 이 작은 새는 다른 새들의 격려와 은총과 자유의 부름을 받고 있다. 작은 새는 날개를 펼치고, 처음으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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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은 항상 열려 있었고, 하늘은 언제나 우리의 탐구를 위해 거기에 있어 왔다는 하나의 새로운 이해의 시작은, 우리를 처음에는 약간 떨리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좋다. 그리고 떨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 앞에 놓여 있는 모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와 가벼운 가슴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에 그늘을 드리우게 하지는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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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간의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가지고 움직여라. 내면의 날개 짓을 느껴 보라. 당신의 날개를 펼쳐라. 그리고 자유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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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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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감옥 밖에, 새장 밖에 있다. 그대는 그대의 날개를 펼칠 수 있고, 하늘 전체가 그대의 것이다. 모든 별들과 해와 달이 그대에게 속해 있다. 그대는 저 너머 푸르름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 그저 이 새장에 대한 집착을 떨쳐 버려라, 새장 밖으로 움직여라. 그러면 하늘 전체가 그대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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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날개를 펴고 독수리처럼 태양을 가로질러 날아가라. 내면의 하늘에서, 내면의 세계에서, 자유는 최고의 가치이다 -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이다. 심지어 지복스러움, 환희도……. 헤아릴 수 없는 수천 송이의 꽃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꽃들은 ‘자유’라는 기후 속에서만 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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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를 위한 때와 장소가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삶을 통제에 맡겨 버린다면, 우리는 결국 완전히 고정되어 버린다. 이 인물은 그를 둘러싼 피라미드 형태의 각(角)들 안에 갇혀 있다. 빛이 빛나고 있고, 그의 매끄러운 표면들을 빛나게 하고 있지만, 그 빛이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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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치 자기 주위에, 자신이 쌓아 놓은 구조물 안에서 거의 미라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그의 주먹은 꽉 쥐어져 있고, 그의 눈길은 공허하며, 거의 눈이 먼 상태이다. 테이블 아래쪽에 있는 그의 하반신은 하나의 칼끝이며, 분할하고 분리하는 하나의 자르는 칼날이다. 그의 세계는 정돈되어 있고 완벽하지만 살아 있지 않다 - 그는 저절로 일어나는 것, 그리고 상처 입기 쉬운 것이 그의 세계 속으로 조금이라도 들어오도록 허용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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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왕’은 우리에게 숨을 한번 깊이 쉬고, 넥타이 끈을 느슨하게 하고 느긋해지라고 일깨우고 있다. 만약 실수들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좋다. 만약 일들이 다소 감당하기 힘들게 된다면, 어쩌면 그것이 바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삶에는 ‘일들 위‘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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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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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받는 사람들은 언제나 초초해한다. 왜냐 하면 내면 깊은 곳에는 혼란이 여전히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통제받지 않고 있고, 흐르고 있고, 살아 있다면, 그 때 그대는 초조해하지 않는다. 초조해해야 할 문제는 없다 - 일어나는 일은 그 무엇이든지 일어난다. 그대는 미래에 대한 기대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대는 연기(演技)하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왜 그대는 초조해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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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차가워져야 하고, 얼어붙어 있어야만 한다. 그러면 삶 에너지가 그대의 팔다리 속으로, 그대의 몸속으로 움직이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만약 에너지가 움직이도록 허용되면 그 억압들이 떠오를 것이다. 사람들이 차가워지는 법을, 다른 사람들을 접촉하면서도 실제로는 접촉하지 않는 법을, 사람들을 보면서도 실제로는 보지 않는 법을 배워 온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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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상투적인 말들과 함께 살아간다 - “안녕하세요. 잘 지내세요?” 그 누구도 그 무엇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두 사람의 진정한 마주침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들은 손을 잡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의 에너지를 느껴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가 털어 놓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아주 두려워하면서 구속복(straitjacket) 속에서 차갑게 그리고 죽어 있는 채로 어떻게든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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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은 삶의 모든 활력과 에너지를 그녀의 마음이라는 좁은 틀 안에 가두어 버렸다. 그 안에서는 그것이 흐를 수가 없기 때문에, 카드 속의 여성은 ‘말라비틀어진 오래 된 자두’가 되어 버렸다. 그녀의 몸가짐은 아주 예의바르고 딱딱하고 엄격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보석처럼 흑과 백으로 모든 상황을 볼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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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여왕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선과 악,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도덕과 부도덕에 대한 고정 관념들과 함께 성장해 온 우리들 모두의 마음 속에 잠재해 있다. 이 모든 마음의 판단들이 단지, 우리의 조건화에서 나온 것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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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의 판단들이 우리 자신에게 적용되든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되든 상관없이, 그 판단들은 우리로 하여금, 내면에 있는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경험할 수 없게 한다. 우리의 조건화라는 새장에서 뛰쳐나와 우리 자신의 가슴에 있는 진리에 도달할 때, 우리는 삶을 실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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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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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달마는 도덕가들, 청교도들, 소위 좋은 사람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훨씬 초월해 있다. 그는 바로 문제의 맨 밑바닥을 건드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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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각성이 그대 안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대의 모든 도덕은 가짜이며 그대의 모든 문화는 누군가에 의해서도 파괴될 수 있는 하나의 얇은 층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단 그대의 도덕이 어떤 규율로부터가 아니라 그대의 각성으로부터 나오게 되면, 그 때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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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대는 그대의 각성으로부터 모든 상황에 감응(感應)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좋을 것이다. 각성은, 나쁜 일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이 각성의 궁극적인 아름다움이다.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그저 아름다우며, 그저 옳다. 그리고 어떤 노력도 없는 어떤 연습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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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잎들과 가지들을 자르기보다는 뿌리를 잘라라. 그리고 뿌리를 자르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깨어 있는, 각성하는, 의식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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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인물은 갑옷으로 완전히 뒤덮여 있다. 분노의 눈빛과 꽉 움켜쥔 주먹 위의 손가락 마디의 흰 부분들만이 보인다. 만약 당신이 갑옷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추들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누군가 그 단추들을 스치기라도 하면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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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배경에서 우리는 이 사람의 마음 속에서 상영되는 희미한 영화를 본다 - 성(城) 하나를 놓고 싸우는 두 인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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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하는 기질이나 마음 속에 쌓인 격분은 종종 깊은 고통의 느낌을 숨기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놀라게 해 쫓아 버리면, 훨씬 더 크게 상처 입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그 정반대가 사실이다. 우리의 상처들에 갑옷을 덮음으로써, 우리는 그 상처들이 치유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사랑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자양분을 우리 스스로가 얻지 못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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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설명이 당신에게 들어맞는 것 같다면, 이제는 싸움을 멈출 때이다. 만약 당신이 그저 그것이 안으로 들어오도록 한다면, 그대에게 너무 많은 사랑이 가능하다. 당신 자신을 용서하는 것에서 시작하라. 당신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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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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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그것은 거기 있었다, 또 다른 순간 그것은 가 버린다. 한순간 우리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순간 우리는 가 버리고 없다. 그리고 이 단순한 순간 동안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소란을 만들어 내는가 - 얼마나 많은 폭력과 야망과 갈등과 분노와 미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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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순간 동안에! 단지 정거장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면서 너무도 많은 소란을 만들어 낸다 -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소유하려 들고, 우두머리가 되려 하고, 지배하려 든다 - 이 모든 정치적인 술수들. 그리고 나면 기차가 오고 그대는 영원히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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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음이 본래 하인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우리가 그것이 우리의 삶을 꾸려 나가도록 허용하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머리는 기계 장치들로 채워져 있고, 입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리고 주위의 공기는 온통 ‘논쟁들‘과 ‘견해들’이라는 이 공장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 “그러나 잠깐만,” 당신은 말한다. “마음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마음은 모든 진보들, 모든 위대한 진리들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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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그 말을 믿는다면 한 가지 실험을 해 보라. 당신의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녹음기를 틀고, 당신 자신에게 ‘당신의 마음에 있는’ 그 어떤 것이든지 말하도록 완전히 허용하라. 만약 어떤 검열이나 편집 없이, 진짜 그것이 전부 나오도록 허용한다면,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의 양에 놀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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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시종은,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일종의 ‘머리 여행’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고, 그 사람이 당신은 아닌지 확인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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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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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그대의 머리의 상황이다. 나는 그대가 도처에서 모아 온 자전거 핸들들과 페달들 그리고 이상한 물건들을 본다. 그토록 작은 머리에……. 그리고 그 안에 살 수 있는 공간은 없다! 그리고 그 쓰레기들이 계속해서 그대의 머리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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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머리는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고 전후좌우로 움직이고 있다 - 그것이 계속 그대를 몰두하도록 만든다. 그대의 마음 속에서 어떤 종류의 생각들이 계속되고 있는지 그저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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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그저 앉아서 문을 닫고, 30분 동안 그대의 마음 속으로 지나가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적어 보라. 그러면 그대는, 내가 의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대의 마음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들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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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그 이면(裏面)에 남아 있다, 그것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그것은 하나의 구름처럼 그대를 에워싸고 있다. 이 구름으로 인해 그대는 실재를 알 수 없다. 그대는 영적인 인식(認識)에 도달할 수 없다. 이 구름이 떨쳐 버려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질 것인지는 그것을 떨쳐 버리고자 하는 그대의 결정에 달려 있다. 그대가 그것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 구름은 그대에게 관심이 없다, 그 점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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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디오니소스와 같은 인물은 술도 마실 줄 알고, 해변 가에서 춤도 추고, 빗속에서 노래도 부르며, 동시에 현자(賢者)들의 이해와 지혜의 깊이도 누릴 줄 아는 온전한 인간 바로 ‘조르바 더 붓다’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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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그는 연꽃을 들고 있다. 이 연꽃은 그가 여성적인 우아함을 존중하고, 그 자신 안에 그러한 우아함을 품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의 드러난 가슴(chest) - 열려 있는 가슴(heart) - 과 이완된 배는 그가 자신의 남성성에 대해서도 편안해하며 완전히 만족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물, 불, 흙, 하늘의 네 가지 요소들이 ‘삶의 지혜의 책’ 위에 앉아 있는 무지개의 왕에서 모두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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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여성이라면, 무지개의 왕은 당신의 삶에 당신 자신의 남성적인 에너지의 도움을, 내면의 영혼의 짝과의 합일을 가져다준다. 남성에게, 이 카드는 전통적인 남성이라는 고정 관념을 극복하고 온전한 인간의 충만함이 밖으로 빛을 발하도록 허용해야 하는 때임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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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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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사람들은 몸을 비난해 왔고, 물질을 비난해 왔고, 물질을 ‘환영(幻影)적인 것’, ‘마야(maya)’라고 불러 왔다 - 그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며, 꿈과 똑같은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세계를 부정했다. 그리고 그것이 동양이 가난하고 병들고 굶주림 속에 남아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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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절반은 내면 세계를 받아들여 왔지만, 외면 세계는 거부해 왔다. 또 다른 인류의 절반은 물질 세계만을 받아들이고, 내면 세계를 거부해 왔다. 둘 다 반쪽이다. 그리고 반쪽인 인간은 만족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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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온전해야만 한다. 육체에 있어서도 풍요롭고, 과학에 있어서도 풍요로우며, 명상에 있어서도 풍요롭고, 의식에 있어서도 풍요로워야 한다. 나에게는 오직, 온전한 인간만이 신성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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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르바와 붓다가 서로 만나기를 바란다. 조르바만으로는 공허하다. 그의 춤은 영원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순간적인 즐거움이다. 곧 그는 그것이 싫증날 것이다. 만약 그대가 우주 그 자체로부터 쓸 수 있는 고갈되지 않는 근원을 갖지 않는다면, 만약 그대가 존재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면, 그대는 온전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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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사람, 이것이 인류에 대한 나의 기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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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의 여왕은, 그 꽃피어남과 그 색깔들이 절정에 달해 있는 하나의 환상적인 식물과 같다. 그녀는 아주 성적이며 생생하게 살아 있고, 가능성들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사랑의 음악에 맞춰 손가락들을 튕기고 있고, 그녀의 12궁도 목걸이는 비너스가 그녀의 가슴 위에 놓여 지도록 걸려 있다. 그녀의 옷소매는 수많은 씨앗들을 품고 있다. 그리고 바람이 불면서 그 씨앗들은 흩어져서 그들이 가는 곳 어디에서나 뿌리를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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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 씨앗들이 땅 위에 떨어지든 바위 위에 떨어지든 신경 쓰지 않는다 - 그녀는 단지 삶과 사랑에 대한 순수한 찬미 속에서, 모든 곳에 씨앗들을 뿌리고 있을 뿐이다. 위에서 꽃들이 그녀 자신의 꽃피어남과 조화를 이루면서 그녀 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녀가 앉아 있는 꽃 바로 밑에는 감정의 강물이 즐겁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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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당신은 모든 곳에서 축복들이 쏟아져 내리는 ‘꽃들의 정원’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당신의 신주(神酒)를 마시도록 벌들을 환영하고 새들을 초대하라. 당신의 기쁨을 주위에 퍼뜨려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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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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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그대가 살기를, 풍요로움 속에서 살기를, 전체성 속에서 살기를, 강렬하게 살기를 바란다 - 기독교가 그대에게 바라는 것 같은 최소치가 아니라, 최대치로 넘쳐흐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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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도달해야 한다. 그대의 지복(至福), 그대의 축복, 그대의 환희는 그대 안에 하나의 씨앗처럼 담겨져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의 꽃처럼 열려야 하며, 그 향기를 모든 사람들에게 퍼뜨려야 한다 - 친구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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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깨달음을 나누고 그대의 저 너머의 춤을 나누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이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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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의 기사는 카드에 나오는 거북이처럼,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우리의 집을 짊어지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다른 어떤 곳에서 보금자리를 찾을 필요도 없다. 비록 우리가 감정의 강물 깊은 곳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스스로 충족된 채로 집착들로부터 자유로운 채로 남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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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신이나 남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기대들을 놓아 버릴 수 있는 때이고, 이제껏 당신이 짊어지고 다녔던 모든 환영(幻影)들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때이다. 어떠한 것도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당신의 넉넉함 속에서 휴식하라. 꿈과 희망과 욕망들이 사라지고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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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사라질수록 좋다. 그런 것들의 사라짐은 침묵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질(質)을 위한 공간과 존재하고 있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전과는 달리 이러한 발전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여유와 휴식의 질(質)을 음미하라. 그리고 당신은 이미 집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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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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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meditation)은 일종의 약(medicine)이다. 명상의 사용은 당분간일 뿐이다. 그러나 일단 그대가 그 질(質)을 배우면, 그 때 그대는 어떤 특정한 명상을 할 필요가 없으며, 그 때 그 명상은 그대의 삶 전체로 퍼져 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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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도 선(禪)이고 앉는 것도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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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 질(質)은 무엇이겠는가? 주의 깊게 깨어서 즐겁게, 이유 없이, 중심 잡힌 채로 다정하게, 흐르듯이 걷는다. 그 때 걷는 것은 산책하는 것이다. 다정하게 깨어서 주의 깊게 앉는다, 어떤 동기가 주어지지 않은 채로 - 특별히 어떤 것을 위해서 앉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이완이 되며, 얼마나 휴식이 되는지를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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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걷고 나서, 그대는 한 그루 나무 밑에 앉는다. 그리고 산들바람이 불어와 그대를 시원하게 해 준다. 매순간 자기 자신과 더불어 편안해야만 한다 -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어떤 것도 연마하지 않고, 어떤 것도 연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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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도 선이다, 앉는 것도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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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든 혹은 침묵하든,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그 본질은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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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본질은 편안하다 - 그것이 열쇠가 되는 말이다. 그 본질은 편안하다 - 그것이 열쇠가 되는 문장이다. 그대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라. 그러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는 편안하고, 차분하고, 고요하고, 중심 잡힌 채 남아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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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로 모험심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이 카드의 어린아이처럼 움직인다. 신뢰로 가득 차서 그리고 미지 속으로의 경이감에 이끌려서, 우리는 숲의 어둠을 벗어나 빛의 무지개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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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모험은 계획들이나 지도(地圖)들, 프로그램들, 조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무지개의 시종은 집에서나 사무실 안에서, 황야에서나 도시 안에서, 또는 창조적인 계획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디서든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는 하나의 질(質)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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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열려 있고, 상처 입기 쉬운 어린아이의 신뢰하는 정신으로 우리가 새로움 그리고 미지 속으로 움직여 갈 때면 언제나 삶의 가장 사소한 일들조차도 가장 위대한 모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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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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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은 말한다. 진리는 권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진리는 전통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진리는 과거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 진리는 하나의 급진적인, 개인적인 깨달음(realization)이다. 그대가 그것에 도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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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knowledge)은 확실하다, 개인적인 앎(knowing)을 위한 탐구는 아주아주 모험적이다. 그 누구도 그것을 보장할 수 없다. 만약 그대가 나에게, 내가 어떤 것을 보장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나는 어떤 것도 그대에게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오직 위험만을 보장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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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큼은 확실하다. 나는 그대에게, 길을 잃고 목적지에 결코 도달하지 못할 모든 가능성이 있는 긴 모험만을 보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바로 그 탐구가 그대가 성장하도록 도와 줄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오직 성장만을 보장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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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그 곳에 있을 것이다, 희생이 그 곳에 있을 것이다. 그대는 매일 미지 속으로, 지도에도 없는 곳 속으로 움직여 갈 것이다, 그리고 따라갈 수 있는 지도도, 따라갈 수 있는 안내자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수백만 가지의 위험들이 있고, 그대는 길을 잃을 수도, 헤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이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불안정’이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위험에 직면하는 것이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미지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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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는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어떤 노력도 없이 하늘을 날면서 아래에 펼쳐진 풍경 속에 담긴 모든 가능성들을 내려다본다.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영토 안에 있고 매우 당당하고 스스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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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지금 그대가, 가능성들의 세계가 그대에게 열려 있는 한 지점에 있음을 나타낸다.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더욱더 다정해지고, 더욱더 자기 충족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쉽게 일할 수 있다. 당신은 이완되어 있고 편안하기 때문에 가능성들이 나타날 때, 그 가능성들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그것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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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당신 자신의 본성과 조율되어 있기 때문에, 존재가 정확히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 비행(飛行)을 즐겨라! 당신 앞에 펼쳐져 있는 다양한 모든 경이로움들을 찬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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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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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느 곳에 있는 어떤 경계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는 본래 어떤 경계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 경계 너머에 무엇이 있겠는가? - 또 다른 하늘. 그것이 바로 내가 하늘들 위에 또 다른 하늘들이 그대의 비행(飛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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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만족하지 말라. 쉽게 만족한 채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작은 채로 남아 있다. 작은 것이 그들의 기쁨들이다, 작은 것이 그들의 환희들이다, 작은 것이 그들의 침묵들이다, 작은 것이 그들의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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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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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음은 그대의 자유에 대한, 그대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그대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한 그대 스스로의 강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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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experience)’은 한 권의 노트에 정리할 수 있거나 혹은 필름에 담아서 앨범 속에 붙여 놓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체험하기(experiencing)’는 경이로움 그 자체의 느낌이고 교감의 전율이며,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 있음으로부터 오는 부드러운 어루만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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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여성은 나무를 어루만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무와 교감을 나누고 있다, 그녀는 거의 나무와 하나가 되어 버렸다. 그 나무는 한 그루의 오래 된 나무로 많은 힘든 시절들을 견뎌 왔다. 그녀의 어루만짐은 부드럽고 경건하며, 그녀의 망토 안쪽에 있는 하얀색은 그녀의 가슴의 순수함을 반영한다. 그녀는 겸손하고 소박하다 - 그리고 그것이 자연에 다가가는 올바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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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나무가 갑자기 꽃피어날 때 북을 둥둥 울리지도 않고, 가을에 나무들이 그 잎들을 놓아 버릴 때 만가(輓歌)를 연주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자연에 다가갈 때 자연에는 나눌 수 있는 많은 비밀들이 있다. 만약 최근에 자연이 당신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지금이 자연에게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좋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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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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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주위를 둘러보라, 어린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라, 혹은 그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대의 어머니, 그대의 친구의 눈을 들여다보라 - 또는 그저 한 그루 나무를 느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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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나무를 껴안아 본 적이 있는가? 나무를 껴안아 보라. 그러면 어느 날 그대는, 그대가 나무를 껴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나무 또한 감응하고 그 나무 또한 그대를 껴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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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처음으로 그대는, 나무가 단지 그 형상일 뿐만 아니라 식물학자들이 말하는 특정한 어떤 종(種)이 아닌, 그대의 뜰 안에서 너무도 푸르고, 그대의 뜰 안에서 너무도 꽃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대에게 너무도 가깝고, 그대에게 손짓하면서 그대를 자꾸만 부르고 있는 하나의 미지의 신(神)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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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달라에 나오는 각각의 인물들은 받아들이는 자세로 왼쪽 손바닥을 위로 하고 있으며, 주는 자세로 오른쪽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있다. 그 원 전체는 티벳에서 천둥 번개를 상징하는 이중의 도르제(dorje) 모양을 하고 있으며 엄청난 에너지장(場)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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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달라는 붓다 주위에 형성되는 에너지장과 같은 질(質)을 지니고 있다. 그 원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들 모두는 하나의 생명력 넘치는 합일된 전체를 창조하는 데 한 가지씩 독특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한 송이 꽃과 같다. 그것의 전체는 그 부분들의 합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동시에 각각의 꽃잎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높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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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지금, 당신들 각자가 혼자서 해낼 수 있었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아름다운 그 무엇을 창조하는 데 당신이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하나의 기회가 있다. 당신의 참여는 당신에게 자양분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전체에게도 귀중한 그 무엇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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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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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밤이 가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나마 의식이라도 하게 되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이다. 그대는 저녁이 오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한밤중 그리고 그 노래를? 일출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우리는 거의 눈먼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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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비참함이라는 작은 연못들 안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익숙해서, 만약 누군가가 그대를 빼내 주려고 해도 그대는 발버둥 친다. 그대는 그대의 비참함에서 그대의 괴로움에서 빼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사방에 너무도 많은 기쁨이 있다, 그대는 단지 그것을 각성하기만 하면 되고, 구경꾼이 아닌 참여자가 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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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사색이며 선은 참여이다. 떠나가는 밤에 참여하라, 찾아오는 저녁에 참여하라, 별들에 참여하고 구름들에 참여하라. 참여를 그대의 삶의 방식으로 만들어라, 그러면 전 존재는 그러한 기쁨이 되고 그러한 환희가 된다. 그대는 그보다 나은 우주를 꿈조차 꾸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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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명의 여성들은 높이 공중에 있다, 즐겁게 자유롭게 그러면서도 깨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다. 공중그네뛰기에서는 단 한순간이라도,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absent)’ 수가 없다. 그리고 눈앞의 순간에 전체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이 카드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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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 할 수 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맡아서 그 일을 꾸준히 해 나가는 대신에, 이것 조금 저것 조금 하려고 하다가 수렁에 빠져 버린다. 혹은 우리는 우리의 일을 ‘지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그 일을 하느냐라는 것을 잊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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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는 것이 그 무엇이든 그것이 찾아올 때 그것에 전체적으로 감응할 수 있는 그 요령을 계발하는 것이,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들 중의 하나이다. 삶을 통해서 한 번에 한 걸음씩만을 내딛는 것, 한 걸음 한 걸음에 당신의 완전한 주의와 에너지를 주는 것이, 당신이 하는 모든 것에 하나의 경이로운 새로운 생명력과 창조성을 가져다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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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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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은 전체적일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 그대가 무엇을 하고 있든 그것에 너무 완전히 열중하라. 그러면 마음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 있다, 그저 하나의 ‘있음(presence)’뿐이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전체성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전체성의 맛은 그대를 점점 더 전체적일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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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대가 언제 전체적이지 않은지 보려고 노력하라. 그러한 순간들은 서서히, 서서히 떨쳐져야만 하는 순간들이다. 그대가 전체적이지 않을 때, 그대가 머리 속에 있을 때 - 생각하고, 골똘히 생각하고, 계산하고, 교활하고, 약삭빠를 때 - 그대는 전체적이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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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서서히 그러한 순간들로부터 빠져 나와라. 그것은 단지 하나의 오래 된 습관에 불과하다. 습관들은 없어지기 힘들다. 하지만 그것들은 분명히 없어진다. 만약 끝까지 밀고 나간다면 습관들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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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은 바로 지금 분명히 ‘세상의 정상‘에 있다. 그리고 세상 전체가 색종이 퍼레이드로 그의 성공을 축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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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최근의 삶의 도전들을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당신은 지금 - 혹은 당신은 곧 그렇게 될 것이다 - 성공의 호랑이를 멋지게 타는 것을 즐기고 있다. 그것을 환영하라, 그것을 즐겨라, 그리고 당신의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라 - 그리고 모든 빛나는 퍼레이드들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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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이것을 늘 염두에 두고, 당신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행복에서 모든 과즙들을 짜낼 수 있다면, 당신은 미래가 올 때 후회 없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풍요로운 순간에 매달리거나 혹은 그것에 플라스틱을 씌워서 그것을 영원히 유지시키려 하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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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이라는 퍼레이드 속의 모든 현상들에서 - 그것들이 골짜기이거나 정상이거나 - 당신이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가장 큰 지혜는 “이것 역시 지나갈 것이다.”라는 것이다. 축하하라, 그렇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호랑이를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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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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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大洋) 속의 그 파도들을 지켜보라. 그 파도가 높이 올라갈수록 그 뒤에 오는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더 깊다. 한순간 그대는 파도이다, 또 다른 순간 그대는 그 뒤에 오는 파도가 움푹 패인 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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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모두를 즐겨라 - 한쪽에 빠지지 말라. “나는 항상 정상 위에 있고 싶다.”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단순히 그 사실을 보라.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한 일은 결코 일어난 적도 없었고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 사물들의 본성 안에 그런 것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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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정상을 즐기고, 그리고 골짜기가 찾아올 때 골짜기를 즐겨라. 골짜기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낮다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그것은 하나의 이완이다. 정상은 하나의 흥분이고 아무도 계속 흥분 속에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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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계획들로 또 너무 많은 ‘공중에 있는 공들’로 인해 너무 많은 부담이 지워져 있을 때, 갑자기 독감에 걸리거나 혹은 넘어져서 결국 목발 신세가 되는 사람들을 당신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그것은 여기 그려져 있는 것처럼, 손에 핀을 쥔 작은 원숭이가 원맨쇼를 하는 광대를 지금 막 놀리려고 하고 있는 일종의 ‘나쁜 시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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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로 상징되는 스트레스는 우리 모두에게 이따금 찾아오지만 특히 완벽주의자들이 그것으로 인해 상처 입기 쉽다. 우리는 ‘우리가 없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다 - 특히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라는 생각으로 우리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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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가? 만약 당신이 자명종을 맞추어 놓지 않으면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산책을 나가 보라, 몇 송이 꽃을 사 보라, 당신이 직접 스파게티 저녁 식사를 준비해 보라 - ‘중요하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든 괜찮을 것이다. 그저 당신 자신을, 그 원숭이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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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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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적(私的)인 목표들은 신경증적이다. 본질적인(essential) 사람은 “나는 전체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고, 혼자 힘으로 어떤 운명을 찾아다니고 추구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일들은 일어나고 있고 세상은 움직이고 있다 - 그것을 신이라고 불러라, 그가 일들을 하고 있다. 그것들은 저절로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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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떠한 투쟁 어떠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어떤 것을 위해서 싸울 필요가 없다. 나는 이완할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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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인 사람은 하나의 행위자가 아니다. 그러나 비본질적인(accidental) 사람은 하나의 행위자이다. 물론, 그 때 비본질적인 사람은 걱정과 긴장, 스트레스와 고민 속에 있으며, 하나의 화산 위에 계속해서 앉아 있다. 그것은 어느 순간에도 폭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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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 하면 그는 불확실성의 세계 속에 살면서도, 그것이 마치 확실한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존재 안에 긴장을 만들어 낸다. 그는, 깊은 곳에서는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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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길을 가고 있는 아주 조그마한 인물은 목적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 혹은 그녀는, 그 여정이 목적지이며 순례 그 자체가 성지(聖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길 위에서의 걸음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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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풀이에서 이 카드가 나오게 되면, 그것은 이동과 변화의 시기임을 나타낸다. 그것은 한 장소에서 그 다음 장소로 가는 물리적인 이동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람이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가는 내적인 이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 이 카드는, 길을 가는 것이 쉬울 것이며, 모험심과 성장을 가져다 줄 것임을 약속한다. 발버둥치거나 지나치게 많은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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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 카드는 또한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것과는 다른 문화와 환경을 가진 나라를 여행할 때처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껴안으라고 일깨워 주고 있다. 이러한 ‘열려 있음’과 ‘받아들임’의 태도가 우리의 삶 속으로 새로운 친구들과 체험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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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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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언제나 그리고 늘 하나의 연속성이다. 향해서 가야 할 최종 목적지는 없다. 어떤 지점에 이르는 것이 아닌 목적 없는 그 순례, 그 여정 자체가 삶이다 - 어떤 목적지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고 순례 속에서 그저 춤추고 존재하며, 기쁘게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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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해서 무엇을 하겠는가? 아무도 이것을 묻지 않아 왔다. 왜냐 하면 모든 사람이 삶에서 어떤 목적지를 가지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정말 목적지에 도착한다면 그 때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대는 아주 당혹스러울 것이다. 가야 할 곳이 없다. 그대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그대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대는 모든 것을 잃어버려야만 했다. 그래서 최종 목적지에서, 그대는 벌거벗은 채 서서 바보처럼 주위를 둘러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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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 핵심이었던가? 그대는 너무 심하게 서둘렀고, 너무 심하게 걱정하고 있었고, 이것이 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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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그림은 ‘자부심’과 ‘생산성’이라는 거대하고 우스꽝스러운 기계에 계속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노력을 하느라, 삶 에너지 전체가 고갈되어 버린 사람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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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체가 맞물려 돌아가도록’ 그리고 ‘하나하나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너무 바빴기 때문에 진정으로 휴식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분명히 그는 자신이 즐거워지는 것을 허용하지 못한다. 해변으로 여행을 가기 위해 자신의 임무를 저버린다는 것은, 그 구조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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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카드의 메시지는 단지 일 중독자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세워 놓은, 안정되지만 부자연스러운 일상들 속의 모든 방식들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혼란스러운 것들, 저절로 일어나는 것들이 우리의 문들 가까이에 오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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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관리해야 하는 하나의 비지니스가 아니라, 살아야 하는 하나의 신비다. 지금은 근무 시간표를 찢어 버리고, 그 공장을 벗어나서 지도에도 없는 곳으로 작은 여행을 떠날 때이다. 이완된 마음의 상태에서 당신의 일 또한 더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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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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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심(conscience)을 통해서 사는 사람은 굳어진다. 의식(consciousness)을 통해서 사는 사람은 부드러운 채로 있다. 왜인가? - 왜냐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굳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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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주위에 끊임없이 자신의 인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 인격은 하나의 갑옷과 같고, 그의 방어막, 그의 안전망과 같다. 그의 삶 전체가 그 인격에 투자된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직접적으로가 아닌 그 인격을 통해서 상황들에 반응(反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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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가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면 그의 대답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그것이 굳어져 있는 사람의 표시이다 - 그는 둔하고 어리석으며 기계적이다. 그는 하나의 좋은 컴퓨터일지는 모르지만, 하나의 사람은 아니다. 그대는 무언가를 하고, 그는 정해진 방식대로 반응한다. 그의 반응은 예측 가능하다. 그는 하나의 로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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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람은 저절로 일어나는 대로 행동한다. 만약 그대가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면, 그대의 질문은 하나의 반응이 아닌 하나의 감응(感應)을 받는다. 그는 그대의 질문에 그의 가슴을 연다, 그대의 질문에 자신을 드러낸다, 그대의 질문에 감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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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인물은 말 그대로 ‘매듭들에 완전히 묶여 있다’. 그의 빛은 여전히 내면에서 빛나고 있지만 너무 많은 요구들과 기대들을 맞추려고 하다가 그 자신의 생명력을 억눌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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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을 가두어 왔던 바로 그 힘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과 비전(vision)을 포기해 왔다. 이런 식으로 자연스러운 에너지를 억압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이 인물의 주변에서 막 일어나려고 하고 있는, 화산 폭발에의 그 갈라진 금들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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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진정한 메시지는 이 잠재적인 폭발을 치유하는 하나의 출구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 그대 안에 쌓여 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어떤 긴장들이나 스트레스들을 풀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찾는 것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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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마구 두들기거나 높이 뛰어 보거나, 들판으로 나가 텅 빈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러라 - 당신의 에너지를 뒤흔들어 그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지……. 일어날 재난을 기다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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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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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어에 ‘알라야 비그얀(alaya vigyan)’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그것은 그대가 하고 싶지만 사회의 조건화, 문화, 문명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을 계속 지하실에 버리는 집을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계속 거기에 쌓여 가고, 그리고 그것들이 그대의 행동들 그대의 삶에 아주 간접적인 방법으로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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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은 직접적으로 그대를 마주 볼 수가 없다 - 그대는 그것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지만, 그것들은 어두운 쪽에서 그대의 행동에 계속 영향을 준다. 그것들은 위험하다. 그 모든 억압들을 그대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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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은, 한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니게 될 때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제 정신이 아닌 것이란, 이러한 모든 억압들이 그대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한 지점에 이르게 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광기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반면에 명상은 그렇지 않다 - 그리고 명상은 그대를 완전히 제 정신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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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땅과 연결되어 있다(grounded).” 혹은 “중심 잡혀 있다(centered).”고 말할 때,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바로 이 ‘근원’이다. 우리가 하나의 창조적인 계획을 시작할 때, 우리가 조율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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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우리가 쓸 수 있는 하나의 광활한 에너지의 저수지가 있음을 그리고 이 에너지의 근원은 생각하고 계획함으로써가 아니라, 그 근원과 접촉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땅과 연결되어 있고, 중심 잡혀 있고, 침묵하게 됨으로써 깨어난다고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과 자양분을 제공해 주는 사적(私的)이며 개인적인 태양처럼 우리들 각자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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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하고 있는, 쓸 수 있는 순수한 에너지, 그것은 그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고, 우리가 휴식하고 싶을 때면,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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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당신이 새로운 그 무엇을 시작하고 있고, 지금 바로 영감(靈感)을 원한다면 혹은 당신이 방금 무언가를 마치고 쉬고 싶다면 그 근원으로 가라. 그것은 언제나 그대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대는 그것을 찾기 위해 당신의 집을 나설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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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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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은 그대에게 머리에서 빠져 나와 근본적인 근원으로 가라고 한다. 머리에 쓰이는 에너지의 유용성을 선이 각성하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러나 머리에 모든 에너지가 쓰여진다면, 그대는 결코, 그대의 영원성을 각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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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결코, 전체와 하나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의 체험으로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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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가 바로 그 중심에 고동치면서 있을 때, 그것이 머리로도 아니고 가슴으로도 아닌, 그 어디로도 움직이고 있지 않을 때, 그러면서도 가슴이 에너지를 얻고, 머리가 에너지를 얻는 바로 그 근원에 있을 때 - 그것이 바로 ‘좌선’의 진정한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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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은 그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고 단지, 바로 그 근원에 앉아 있는 것을 뜻한다, 하나의 엄청난 힘이 생겨난다, 빛과 사랑으로의, 더 위대한 삶으로의, 자비로의, 창조성으로의 하나의 변형이 생겨난다. 그것은 많은 형태들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먼저 그대는 그 근원에 존재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그러면 그 근원은, 그대의 잠재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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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 근원에서 이완할 수 있으며, 그것은 바로 그대의 그 잠재력으로 그대를 데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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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꽃나무들은 서로 얽혀 있으며, 떨어진 그 꽃잎들은 아름다운 색조를 띠고 땅 위에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것은 마치 사랑에 의해 하늘과 땅 사이에 다리가 놓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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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은 독자적으로 서 있고, 대지와의 연결 속에서 땅 속에 각자 뿌리내려져 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성숙하고, 서로에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진정한 친구들의 본질을 상징하고 있다. 거기에는 서로의 연결에 대한 어떤 절박함도, 어떤 다급함도, 상대방을 다른 무언가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어떤 욕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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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당신이 이러한 친밀함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온갖 드라마들과 로맨스들에는 자신이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의 잃어버림이 아니다. 그것은 경험의 풍부함에서 태어난 보다 높고, 보다 다정한 하나의 질(質)의 탄생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무조건적이고 기대들이나 요구들이 없는 사랑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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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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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명상하라, 지복 속에 있어라. 그러면 많은 사랑이 저절로 일어날 것이다. 그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아름답고, 홀로 있는 것 역시 아름답다. 그 때에는 그렇게 하기도 쉽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대에게 의존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 때 그것은 항상 하나의 우정(friendship), 하나의 친밀함(friendliness)이다. 그것은 결코 하나의 ‘관계(relationship)’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하나의 ‘관계되어 있음(relatednes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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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관계하지만, 그대는 하나의 결혼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결혼은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지만, ‘관계되어 있음’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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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관계한다. 일들이 아름답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 한, 그대는 나눈다. 그리고 만약 그대들의 길들이 이 갈림길에서 나누어지기 때문에 헤어져야 할 순간이라는 것을 안다면, 상대방이 그대에게 의미되어 왔던 그 모든 것에 대해, 그대가 상대방과 나누었던 모든 기쁨들과 모든 즐거움들 그리고 모든 아름다웠던 순간들에 대하여 커다란 감사를 가지고 작별 인사를 하라. 비참함도 없이, 고통도 없이, 그대는 단순히 분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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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바람과 빗속에서 춤추고 있는 세 명의 여성은, 축제는 결코 외부 환경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우리는 특별한 휴일이나 형식적인 때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화창하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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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축제는 내면 깊이 먼저 경험되어진 하나의 기쁨으로부터 일어나며, 노래와 춤과 웃음의 흘러넘침으로 넘쳐흐른다. 그리고 그렇다, 심지어 감사의 눈물로 넘쳐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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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 카드를 뽑았다면, 그것은 삶 속에서 축하해야 할 많은 기회들이 더욱더 가능해지고, 그것들에 열려 있게 될 것이며, 이것을, 접촉을 통한 전염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린다는 것을 나타낸다. 당신의 달력에 파티 날짜를 잡는 데 신경 쓰지 말라. 머리를 풀어 헤치고, 신발을 벗고, 웅덩이들 속에서 첨벙거려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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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파티는 매순간, 당신의 주변 모든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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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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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즐기고 축하해야 할 하나의 순간이다. 그것을 하나의 축제로 즐겁게 만들어라. 그러면 그대는 그 사원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사원은 슬픈 얼굴을 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결코 그들을 위한 것이었던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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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라보라 - 그대는 그 어느 곳에서 슬픔을 볼 수 있는가? 그대는 우울해하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그대는 근심에 찌든 새를 본 적이 있는가? 그대는 노이로제에 걸린 동물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 삶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직 인간만이 어딘가 잘못되었으며, 인간 스스로가 매우 지혜롭고 매우 영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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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영리함이 그대의 병이다. 너무 지혜로우려고 하지 말라. 항상 멈추는 것을 기억하라. 그 극단으로 가지 말라. 약간의 어리석음과 약간의 지혜가 좋다. 그리고 그 적절한 배합이 그대를 하나의 붓다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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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의 여성은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사실 그녀는 단지 마음의 익살스러운 행동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판단하지 않고, 그것들을 중단시키려고 하지도 않으며, 동일시되지도 않고, 마치 그것들이 도로 위의 자동차인 것처럼 혹은 호수 수면 위의 잔물결인 것처럼 단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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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펄쩍펄쩍 뛰며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억지를 부리고, 당신의 주의를 끌고, 그 게임 속으로 당신을 유혹하려고 할 때, 마음의 익살스러운 행동들은 다소 우스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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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요령을 계발해 나가는 것은 가장 커다란 축복들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명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전부이다 - 주문을 외고, 자기 암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것처럼, 단지 지켜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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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은 그 드라마에 휘말려들지 않고, 거리를 두고 그 쇼를 지켜볼 준비가 되어 있다. 당신이 할 수 있을 때면 언제나, ‘내면으로의 전환’이라는 단순한 자유에 빠져라. 그러면 그대 안에서 명상의 요령이 자라나고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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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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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으로의 전환은 결코, 하나의 전환이 아니다. 내면으로 가는 것은 결코 가는 것이 아니다. 내면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그대가 이 욕망, 저 욕망을 쫓아 뛰어 왔고, 뛰고 또 뛰어 왔지만 계속해서 좌절에 이르러 왔음을 의미한다. 각각의 욕망은 비참함을 가져오며, 욕망을 통한 충족은 없다는 것이다. 그대는 결코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며, 만족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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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쫓아 뛰는 것이 그대를 어디로도 데려가지 못한다는 이 사실을 알면, 그대는 멈춘다. 멈추기 위해 그대가 어떤 노력을 해서가 아니다. 만약 멈추기 위해 그대가 어떤 노력이라도 한다면, 그것은 또 미묘한 방식으로 뛰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여전히 욕망하고 있다 - 어쩌면 이제 그대가 욕망하는 것은 바로 ‘욕망 없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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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면, 그대는 여전히 밖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노력이든지 그것은 그대를 밖으로, 바깥쪽으로 데려갈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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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들은 바깥쪽으로의 여행이다. 안쪽으로의 여행은 없다. 어떻게 그대가 안쪽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겠는가? 그대는 이미 거기에 있다, ‘간다’는 것에는 핵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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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것을 멈출 때, 여행하는 것은 사라진다. 욕망이 더 이상 그대의 마음을 흐리게 하지 않을 때, 그대는 안에 있다. 이것은 ‘내면으로의 전환’이라고 불리워진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전환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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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에 그려진 인물은 기억의 상자를 너무 꽉 붙들고 있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맛볼 수 있는 거품이 일고 있는 축복의 샴페인 잔에 등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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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으로 기워진 남루한 그녀의 옷차림에서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실제로 그녀의 과거에 대한 향수는 그녀를 ‘바보’로 그리고 거지로 만들어 놓는다. 물론 그녀는 거지일 필요가 없지만, 그녀는 현재 펼쳐져 있는 기쁨들을 맛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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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이다. 그것을 반복하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그 낡은 청사진들에 빠져 있게 만드는 확실한 한 가지 방법이다. 당신이 이미 끝난 것들에 대해 집착하느라 그렇게 바쁘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벌써 그 낡은 청사진들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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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한번 깊이 쉬고, 그 상자를 내려놓고, 당신이 해야 한다면 그것에 예쁜 리본을 묶어서 다정하고 정중하게 작별 인사를 하라. 삶이 당신 곁을 지나가고 있고, 당신은 당신의 시간이 오기도 전에 낡은 화석이 되어 버릴 위험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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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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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제(時制)들 -과거, 현재, 미래- 은 시간의 시제가 아니다. 그것들은 마음의 시제들이다. 마음 앞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과거가 된다. 마음 앞에 존재하는 것은 현재이다. 마음 앞에 존재하게 될 것은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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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그대 앞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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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그대에게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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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재는 그대 앞에 존재하는 ‘그것’이며, 그대의 시야로부터 빠져 나가고 있다. 곧 그것은 과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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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가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왜냐 하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순전히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이상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대는 엎질러진 물 때문에 울고 있다. 가 버린 것은 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현재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 왜냐 하면 그것 또한 가 버릴 것이며 곧 지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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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 희망들, 상상들, 내일에 대한 계획들 - 에 집착하지 말라. 왜냐 하면 내일은 오늘이 되고 어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어제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이 그대 손을 빠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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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은 단지 비참함을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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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놓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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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황홀한 저녁, 당신은 당신의 영혼의 짝(soulmate)을, 그리고 당신의 모든 요구들을 충족시키고, 당신의 모든 꿈들을 실현시켜 줄 완벽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럴까? 그렇지 않다! 작사가들 그리고 시인들이 그토록 영원히 좋아하는 이러한 환상은, 우리가 너무도 안전했고, 우리의 어머니와 너무도 ‘합일되었던(at one)’, 자궁에 대한 기억들에 그 뿌리들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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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평생 그 곳으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해 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좀 심하게 말하면, 그것은 하나의 유치한 꿈이다. 그리고 현실 앞에서도 그토록 끈질기게 그 꿈에 매달린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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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배우자가 됐든, 어떤 미래의 꿈꿔 온 파트너가 됐든,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의 행복을 접시에 담아 올 의무는 없다 -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 해도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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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함으로써 자신의 빈곤함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적인 풍요로움과 성숙함을 계발함으로써 찾아온다. 그 때 우리는 줄 수 있는 너무도 많은 사랑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연인을 우리 쪽으로 끌어당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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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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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대를 거치면서도 이 말은 계속 말해져 왔다. 모든 종교적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 왔다. “우리는 이 세상에 홀로 왔다, 홀로 간다.”‘함께함(togetherness)’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착각이다. 우리는 홀로이고, 그 ‘홀로 있음’이 아프기 때문에 바로 ‘함께함’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우리의 홀로 있음에 대한 각성이 무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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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사랑에 열중하는 이유이다. 그 핵심을 보려고 노력하라. 보통 그대는 그녀가 아름답고, 그가 아름답기 때문에 한 여자와 혹은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정반대이다. 그대는 홀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대는 빠지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대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대 자신을 피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 혹은 남자들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 그 때 그들은 돈과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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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돈 속으로, 권력 여행 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정치가들이 된다. 그것 역시 그대의 홀로 있음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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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가 사람들을 지켜본다면, 만약 그대가 그대 자신을 깊이 지켜본다면, 그대는 놀랄 것이다 - 그대의 모든 행동들은 단 하나의 근원으로 요약이 된다. 그 근원은 그대가 그대의 홀로 있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다. 그 진짜 원인은, 그대 자신이 정말 혼자라는 것을 그대가 발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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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남자와 여자는 서로 마주 보고 있기는 하지만 서로를 분명하게 볼 수가 없다. 서로가 그들의 마음 속에서 만들어 낸 하나의 이미지를 투사(投射)하고 있고, 그것이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을 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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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이 만든 영화(映畵)들을 우리 주위의 상황들과 사람들에게 투사하게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기대들, 욕망들 그리고 판단들을 충분히 자각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것들을 인정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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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는 악마 같을 수도 신성할 수도 있고, 불안하게 만들거나 편안함을 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하나의 투사이다 -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구름이다. 유일한 출구는 그 게임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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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다른 사람에 대한 어떤 판단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될 때, 방향을 바꾸어라. 당신이 다른 사람들 속에서 보는 것이 사실은 당신의 것은 아닌가? 당신의 시각은 맑은가, 아니면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으로 인해 흐려져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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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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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그대는 스크린을 바라본다, 그대는 결코 그 뒤를 바라보지 않는다 - 영사기가 그 뒤에 있다. 영화는 실제로는 스크린 위에 없다. 그것은 빛과 그림자의 투사일 뿐이다. 영화는 바로 뒤에 존재하지만, 그대는 결코 그것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고 영사기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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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마음은 모든 것들의 뒤에 있고, 그 마음이 영사기이다. 하지만 그대는 항상 상대방만을 바라본다. 왜냐 하면 상대방이 스크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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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사랑 속에 있을 때, 그 사람은 아름다운 것처럼 보인다, 비교가 안 된다. 그대가 미워할 때 똑같은 사람이 가장 추한 것처럼 보이며, 그대는 결코 어떻게 똑같은 사람이 가장 추할 수 있고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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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대의 비전(vision) 안에서 즉각적이 되는 법을, 마음의 도움을 떨쳐 버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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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는, 이 대리인이 문제이다. 왜냐 하면 마음은 꿈들만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의 흥분으로 인해, 그 꿈은 실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대가 너무 흥분하면, 그 때 그대는 취하고, 그 때 그대는 제 정신이 아니다. 그 때 그대가 보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의 투사에 불과하다. 마음들이 존재하는 만큼이나 많은 세계들이 존재한다. 왜냐 하면 모든 마음은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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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의 연꽃잎들이라는 이 이미지 속에서, 우리는 연못에 잔물결이 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나의 물방울이 지금 막 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소중한 순간이며 강렬함으로 가득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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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에 순종해서 그 잎에서 미끄러지면, 그 물방울은 이전의 자기 자신을 잃고 아래 있는 연못의 광활함에 합류한다. 떨어지기 전에 그 물방울이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바로 그 가장자리에서 분명히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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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를 선택했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끝마쳐지고 무엇인가가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 직업이든, 관계이든, 아니면 당신이 사랑해 온 가정이든, 당신이 누구인지 정의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어떤 것이든 - 그것을 놓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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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슬픔이라도 허용하라. 그러나 붙잡으려고 하지 말라. 더 커다란 그 무엇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차원들이 발견되어지기 위해서 거기에 있다. 이제 당신은 되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지났고, 중력은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그것과 같이 가라 - 그것은 해방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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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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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안에는 우월한 사람도 열등한 사람도 없다. 그 풀잎도 그 거대한 별도 완전히 동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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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간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아지고 싶어한다, 그는 자연을 정복하고 싶어한다. 그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싸워야만 한다. 모든 복잡함이 모두 이 싸움에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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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사람이란 싸움을 포기한 사람이고, 더 이상 높아지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 더 이상 연기(演技)를 하는 데 자기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이며, 한 송이 장미꽃 혹은 연꽃잎 위의 하나의 이슬방울처럼 된 사람이며, 이 무한의 일부가 된 사람이고, 대양 속에 녹아서 대양과 융합되고 하나가 되어 단지 하나의 파도인 사람이며, ‘나’라는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나’의 사라짐이 순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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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사는 분명히 자신이 해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선글라스를 끼고 핑크빛 슬리퍼를 신고 있는 이 신사는, 파라솔 그늘 아래에서 아주 푹신한 자신의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으며, 손에 칵테일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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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이미 그것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서 무언가를 할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지금까지 고개를 돌려 그의 오른쪽에서 금이 가고 있는 거울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침내 그가 도착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곳이 그의 눈앞에서 산산 조각이 나고 녹아 없어지려고 한다는 하나의 확실한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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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풀장 가장자리의 휴양지도 당신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이, 이 카드가 주는 메시지이다. 하늘의 광활함 속으로 날아가고 있는 저 하얀 새가 보여 주듯이 그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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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자기 만족은 진정한 성취감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지금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때이다. 슬리퍼가 아무리 폭신해도, 칵테일이 아무리 맛있어도, 탐험되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하늘 위의 하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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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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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게으를 때, 그것은 하나의 부정적인 맛을 지닌다. 그대는 단지 그대에게 에너지가 없다고 느낀다, 그대는 단지 단조롭다고 느낀다. 그대는 단지 졸립다고 느낀다, 그대는 단지 죽어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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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무위(無爲, non-doing)’의 상태 속에 있을 때, 그 때 그대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 그것은 하나의 아주 긍정적인 맛이다. 그대는 가득 찬 넘쳐흐르는 에너지를 가진다. 그대는 빛나고, 거품이 일듯 생생하며 진동한다. 그대는 졸리지 않다, 그대는 완벽하게 각성하고 있다. 그대는 죽어 있지 않다 - 그대는 굉장하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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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그대를 속일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게으름’을 ‘무위’로 합리화할 수 있다. 마음은 “나는 선사가 되었다.” 혹은 “나는 도(道)를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는 다른 누군가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그대 자신만을 속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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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속에서, 가슴 안에서, 휴식하는 경험은 붙잡을 수 있거나 강요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그 경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내면의 침묵의 리듬들과 점차 조율되어 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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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인물은 이 경험의 달콤함과 섬세함을 반영하고 있다. 가슴에서 나와서, 제3의 눈을 향해 활 모양을 그리고 있는 돌고래들은, 우리가 가슴과 연결되고, 그 가슴에서부터 세상 속으로 움직여 갈 때 찾아오는 즐거움과 지성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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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 자신을 더 부드럽고 더 수용적이 되게 하라. 왜냐 하면 바로 모퉁이만 돌면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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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그것을 가리켜 줄 수 없으며, 그것을 발견할 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르익어 있고 발견되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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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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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가슴에 귀 기울여라. 그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그대의 가슴에 따라 움직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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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단순함의 상태 하나에 최소한 모든 것들을 그 댓가로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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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다는 것은 힘들다. 왜냐 하면 단순하다는 것에, 그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 댓가로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기 위해서 그대는 모든 것을 잃어야만 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복잡한 것을 선택하고 단순해지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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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직 단순한 가슴만이 신(神)과 함께 고동치고, 손에 손을 잡는다. 오직 단순한 가슴만이 깊은 조화 속에서 신과 함께 노래한다. 그 지점에 도달하려면, 그대는 그대의 가슴, 그대 자신의 고동, 그대 자신의 맥박을 발견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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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인물은 강물 속에서 완전히 이완되어 있고 편안하며, 강물이 가는 곳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 그는 졸립거나 지루해하지 않으면서 수동적이며, 수용적이 되는 기술을 터득했다. 삶의 흐름들은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결코 ‘나는 그건 싫어.’ 혹은 ‘나는 다른 길로 가는 게 더 좋아.’ 하는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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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매순간 우리는 삶의 강물 속으로 들어가서 떠 있어야 할지, 아니면 강물을 거슬러 헤엄쳐 가야 할지에 대한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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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풀이에서 이 카드가 나왔다면, 그것은 지금 당신이 떠 있을 수 있으며, 삶이 당신의 이완 속에서 당신을 도와 줄 것이고, 삶이 당신에게 가기를 바라는 곳으로 당신을 정확하게 데려다 줄 것임을 당신이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신뢰와 이완의 느낌이 점점 더 자라날 수 있도록 허용하라. 모든 것은 일어나야 하는 그대로 정확하게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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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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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이 되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의 흐름이 되라는 뜻이다. 고여 있는 채로 남아 있지 말라. 움직여라. 물처럼 움직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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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말한다. “도(道)의 길은 하나의 물이 흘러가는 길이다.” 그것은 물처럼 움직인다. 물의 움직임이란 무엇인가? 혹은 하나의 강의 움직임이란? 그 움직임에 대한 몇 가지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한 가지는, 그것은 항상 ‘깊이’를 향해서 움직인다, 그것은 항상 가장 낮은 바닥을 찾는다. 그것은 비(非)야망적이다. 그것은 첫째이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맨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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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예수는 말한다. “여기서 맨 마지막인 자들이 나의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첫째가 될 것이다.” 그는 도의 물이 흘러가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 그것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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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마지막이 되라, 비야망적이 되라. 야망이란 오르막길을 가는 것을 의미한다. 물은 아래로 간다, 그것은 가장 낮은 바닥을 찾는다, 그것은 하나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를 원한다. 그것은 스스로를 독특하다고, 예외적이라고, 비범하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물은 에고라는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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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인물은 ‘하나의 바위와 하나의 딱딱한 곳 사이에서 꽉 막혀 있던’ 오래 된 생각에 새로운 방법론을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의 우유부단하고 이중적인 면 때문에 곤경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정확하게 이런 상황 속에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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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놓아 버리고 머리부터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발을 놓아 버리고 다리부터 떨어질 것인가? 여기로 아니면 저기로 가야 하는가? “예” 아니면 “아니오”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든지 우리는 항상 ‘다른 쪽으로 결정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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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유감스럽지만 양쪽 모두를 동시에 놓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풀어 보려고 하고, 좋은 점과 나쁜 점들의 목록들을 작성하거나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마음으로 해결해 보려고 해서는, 당신은 이것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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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당신의 가슴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더 낫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찾을 수 없다면 단지 높이 뛰어 보라 - 당신의 가슴은 너무도 빨리 뛸 것이고, 가슴이 어디에 있는지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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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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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분열되어 있다. 정신분열증은 인간의 하나의 정상적인 상태이다 - 적어도 지금은. 원시 시대에서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수세기 동안의 조건화와 문명, 문화와 종교는 인간을 하나의 분리되고 분열되고 모순된 군중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깊은 곳 어딘가의 감춰진 곳에는 그 합일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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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영혼은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조건화들은 기껏해야 인간의 주변을 파괴한다. 그러나 그 중심은 건드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 그런 식으로 인간은 계속 살아간다. 그러나 그의 삶은 하나의 지옥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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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모든 노력은 어떻게 이 정신분열증을 떨쳐 버릴 수 있는가, 어떻게 이 분열된 인격을 떨쳐 버릴 수 있는가, 인간의 그 분리된 마음을 어떻게 떨쳐 버릴 수 있는가, 어떻게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고, 중심잡히고, 결정화(結晶化)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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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지금, 그대가 존재하는 방식으로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대는 하나의 존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하나의 시장이다 - 많은 목소리들. 만약 그대가 ‘예’라고 말하고 싶어하면 곧바로 ‘아니오’가 거기에 있다. 그대는 ‘예’라는 단순한 단어 하나도 전체성을 가지고 입 밖에 낼 수 없다. 이런 식으로 행복은 가능하지 않다. 불행은 분리된 인격의 당연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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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특히 남성들은 울지 않도록, 상처를 입었을 때 상황에 대해 용감한 표정을 짓고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보이지 않도록 배워 왔다. 그러나 여성들 역시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또 다시 상처입지 않도록 우리의 느낌들과 감정들을 꼭꼭 닫는 것이라고 한두 번쯤 느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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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의 고통이 아주 깊을 때, 심지어 우리 자신으로부터 그 고통을 감추려고 한다. 이것이 우리를 경직되고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 왜냐 하면, 얼음에 있는 작은 금 하나가 그 상처를 자유롭게 할 것이고, 다시 우리 몸 전체를 돌아다니기 시작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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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얼굴 위의 무지개빛 눈물들이, 이 ‘얼어붙은 고립(Ice-olation)’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그 눈물들이 그리고 오직 그 눈물들만이 그 얼음을 녹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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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어도 괜찮다. 그리고 당신의 눈물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우는 것은 우리가 고통을 놓아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며, 우리 자신에 대해 부드러울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치유되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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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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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나치게 자아(self)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비참하다. “우리가 지나치게 자아 속에 있다.”고 내가 말할 때, 그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가 지나치게 자아 속에 있을 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대는 존재 속에 있거나 아니면 자아 속에 있다 - 두 가지 모두는 동시에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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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속에 있다는 것은 떨어져 있고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 속에 있다는 것은 하나의 섬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 속에 있다는 것은 그대 주위에 하나의 경계선을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 속에 있다는 것은 “이것은 나이다.”와 “저것은 내가 아니다.” 사이에 하나의 구분을 짓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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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의, 그 경계, ‘나’와 ‘나 아님’ 사이가 자아인 것이다 - 자아는 고립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를 얼어붙게 만든다 - 그대는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있다. 만약 그대가 흐르고 있다면 자아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거의 얼음 덩어리들처럼 되어 버렸다. 그들은 어떠한 따뜻함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어떠한 사랑도 가지고 있지 않다 - 사랑은 따뜻함이며, 사람들은 사랑을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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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따뜻함이 그들에게 찾아오면 그들은 녹기 시작하고, 그 경계들은 사라질 것이다. 사랑 속에서 그 경계들은 사라진다. 기쁨 속에서도 그 경계들은 사라진다. 왜냐 하면 기쁨은 차갑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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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에 나오는 여성은 실재하지 않는, 오려 낸 구름들로 가득 찬 회색빛 풍경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창문틀을 통해 그녀는 빛과 색깔들, 생생함을 볼 수 있으며, 그녀의 옷에 나타난 무지개 색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녀는 그 틀을 뚫고 움직이고 싶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녀의 마음에는 아직도 ‘과거에 이러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움직임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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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이 얼마나 자주 말해지는지에 상관없이, 우리들 대부분은 그 말의 진리를 잊는 경향이 있다. 사실, 일들을 연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한 가지 그리고 유일한 결과는, 미완성과 오늘에 ‘꽉 막혀 있음(stuck-ness)’으로 인해 생기는 지루하고 우울한 느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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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지금 행동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벌벌 떨게 만드는 모든 생각들을 일단 한쪽으로 제쳐 둔다면, 당신은 해방감과 확장감을 느낄 것이며, 당신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지 놀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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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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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이다. 내일 그대가 또 결정해야만 할 것이라면, 왜 오늘은 안 되는가? 그리고 내일 그대가 오늘보다 더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내일 그대가 오늘보다 더 생기에 넘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내일 그대가 오늘보다 더 젊고, 오늘보다 더 신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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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그대는 더 늙을 것이고, 그대의 용기는 줄어들 것이다. 내일 그대는 더 많이 경험되어질 것이고, 그대의 교활함은 더할 것이다. 내일, 죽음은 더 가까이 찾아올 것이다 - 그대는 떨기 시작하고 더 두려워할 것이다. 결코 어떤 것도 내일로 연기하지 말라. 그리고 누가 아는가? 내일은 올 수도 혹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그대가 결정을 해야만 한다면, 그대는 지금 당장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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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의사인 보겔 박사가 젊고 예쁜 여자 환자의 검진을 마쳤다. “베이스먼 양,” 그가 말했다. “안됐지만 사랑니를 뽑아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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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 그 아가씨가 소리쳤다. “차라리 아이를 갖는 게 낫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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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보겔 박사가 말했다. “의자를 조정할 수 있도록 확실히 마음을 결정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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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마음을 결정하라. 계속 무한정 연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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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당신에게, 대나무가 참나무보다 더 아름답다고 혹은 참나무가 대나무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말했는가? 참나무가 이 대나무처럼, 속이 빈 몸통을 가지길 바란다고 생각하는가? 참나무가 더 크고, 가을에 그 잎들의 색깔이 변한다고 해서, 대나무가 참나무에 대해 질투를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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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무가 자기 자신들을 비교한다는 생각 자체가 우스운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이 습관을 깨기가 매우 힘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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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직시하자. 당신보다 더 아름답고, 더 재능 있고, 더 강하고, 더 지성적이고, 혹은 확실히 더 행복한 누군가는 항상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이러한 모든 면에서, 당신보다 못한 사람들도 항상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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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길은, 당신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알고 있는 방법 중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당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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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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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는 우월감과 열등감을 가져온다. 그대가 비교하지 않을 때 모든 열등감, 모든 우월감은 사라진다. 그 때 그대는 존재한다, 그대는 단순히 거기에 존재한다. 하나의 작은 덤불이든, 한 그루 큰 나무이든 - 그것은 상관이 없다. 그대는 그대 자신이다. 그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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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하나도 가장 큰 별만큼이나 필요하다. 그 풀잎이 없다면, 신은 지금의 그보다 못할 것이다. 이 뻐꾸기 소리도 어떤 붓다만큼이나 필요하다. 만약 이 뻐꾸기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그보다 못할 것이고, 덜 풍요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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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둘러보라. 모두가 필요하며, 모든 것이 서로 잘 어우러져 있다. 그것은 하나의 유기적 합일이다. 더 높은 사람도 없고 더 낮은 사람도 없고, 우월한 사람도 열등한 사람도 없다. 모든 사람은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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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사람들에 의해 우리에게 강요된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라는 짐을 짊어질 때, 우리는 언덕 위를 올라가려고 애를 쓰는 이 누추한 인물처럼 되어 버린다.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탄 어리석은 폭군은 “더 빨리 가라, 더 열심히 노력하라, 정상에 도달하라!”라고 외치지만, 그 폭군 자신 위에도 오만한 수탉이 얹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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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요즘 삶이 마치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투쟁처럼 느껴진다면, 한번 어깨를 으쓱하고, 당신의 등에 이러한 인물들 없이 걸을 때의 기분이 어떤지 알아 볼 때라고 할 수 있다. 당신에게는 정복해야 할 당신만의 산들이, 성취해야 할 당신만의 꿈들이 있다. 그러나 당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모아 온 것인데도, 지금은 당신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모든 기대들로부터 당신 자신을 해방시키기 전에는, 당신은 결코 그것들을 추구할 에너지를 갖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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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 기대들은 당신 자신의 마음 속에만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이 그대를 짓눌러 버릴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는 완전히 가벼워져야 할 때이며, 그것들이 제 갈 길을 가도록 보내 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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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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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정한 삶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강요된 거짓을 벗는 길이다. 벗겨진 채로 알몸으로, 자연스러운 채로 그는 그인 것이다. 이것은 ‘있음(being)’의 문제이지, ‘되는 것(becoming)’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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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은 진리가 될 수 없다, 인격은 그대의 영혼이 될 수 없다. 비본질적인 것을 본질적인 것으로 만들 방법은 없다. 비본질적인 것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남아 있으며, 본질적인 것은 본질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그것들은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진리를 향해 힘쓰는 것은 더 많은 혼란을 만들어 낼 뿐이다. 진리는 성취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취될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사실이다. 그저 거짓만이 떨쳐 버려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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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목표들과 목적들, 이상들과 목표들, 이데올로기들, 종교들, 개선과 개량의 학설(學說)들은 거짓들이다. 그런 것들을 경계하라. 그대는, 지금 그대로의 그대는 하나의 거짓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조종되고 길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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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것이며 미루는 것이다. 그것은 거짓이 숨는 방법이다. 그 거짓을 보라, 그대 인격의 거짓을 깊이 들여다보라. 왜냐 하면 거짓을 보는 것은 거짓을 중단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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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거짓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어떤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 그럴 필요가 없다. 거짓이 사라지는 순간, 진리는 거기에 그 모든 아름다움과 광채 속에 존재한다. 거짓을 봄으로써 그것은 사라지고 남겨져 있는 것이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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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가? 우리들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진실하다는 사람들조차 마음 어딘가에는 정치가가 숨어 있다. 사실, 마음은 정치적이다. 바로 그 속성이 계획하고, 책략을 꾸미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황들과 사람들을 조종하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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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마음은 뱀으로 상징되며, 그 뱀은 구름들로 덮혀 있고, ‘갈라진 혀로 말하고 있다’. 이 카드에 대해 깨달아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두 개의 얼굴 모두가 가짜라는 것이다. 달콤하고 순수한 ‘나를 믿으세요.’라는 얼굴은 하나의 가면이며, 사악하고 표독스러운 ‘나는 너를 내 맘대로 할거야.’라는 얼굴 또한 하나의 가면이다. 정치가들에게는 진짜 얼굴이 없다. 그 게임 전체가 하나의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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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자신을 잘 바라보고, 당신도 이런 게임을 해 오고 있지는 않았는지 보라. 보는 것은 고통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이 게임을 계속하는 것만큼 고통스럽지는 않다. 그것은 결국 아무에게도 이익이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당신에게 이익이 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당신이 얻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당신의 손 안에서 먼지로 변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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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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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假裝)을 잘 하는 사람, 위선자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정치적으로는 그대의 지도자가 되고, 종교적으로는 그대의 성직자가 될 것이다. 위선이 그가 필요한 전부이고, 교활함이 그가 필요한 전부이며, 그 뒤에 숨을 수 있는 하나의 겉모습이 그가 필요한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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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정치가들은 이중적인 삶을 산다, 그대의 성직자들은 이중적인 삶을 산다 - 하나는 앞문에서, 다른 하나는 뒷문에서. 그리고 뒷문에서의 삶이 그들의 진짜 삶이다. 그 앞문에서의 미소들은 단지 가짜이며, 너무도 순진하게 보이는 그 얼굴들은 단지 인위적으로 계발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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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가 정치가의 실재를 보고 싶다면, 그의 뒷문에서 그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벌거벗음 속에, 있는 그대로의 그가 거기에 있으며, 성직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교활한 두 종류의 사람들이 인류를 지배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일찌감치, 만약 인류를 지배하려 한다면 인류를 약하게 만들고, 인류를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들며, 인류를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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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존엄성을 파괴하라, 인류로부터 모든 영광을 빼앗아라, 인류에게 굴욕감을 느끼게 하라. 그리고 그들은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너무도 미묘한 방법들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것들은 전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들은 그대 스스로에게 굴욕감을 느끼게 하고, 그대 스스로를 파괴하는 일을 그대에게 맡긴다. 그들은 그대에게 일종의 느린 자살을 가르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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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은 우리가 사로잡힐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감정들 중의 하나이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했거나 우리 자신의 진실에 어긋나게 되면, 우리는 기분이 안 좋다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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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을 죄의식에 사로잡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편두통을 초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결국 ‘자기 불신’이라는 성가신 구름들로, 그리고 무가치함이라는 느낌들로 에워싸이고, 삶이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볼 수 없는 지점에까지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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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더 나은 - 더욱 다정하고, 더욱 깨어 있고, 더욱 우리 자신에게 진실된 - 사람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실패들에 대해 죄의식을 느껴서 스스로를 벌할 때, 우리는 절망과 자포자기의 주기(週期) 속에 갇힐 수 있다. 그리고 절망과 자포자기는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가 마주치는 상황들에 대한 명료함을 모두 빼앗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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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의 모습 그대로 완전히 괜찮다. 그리고 때때로 길을 잃는 것도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그것으로부터 배워라, 계속 나아가라.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교훈을 사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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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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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할 때, 이 순간! 이 ‘여기지금(herenow)’이 잊혀진다. 그 성취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그대는 그대가 그 안에 들어 있는 천국과의 접촉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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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가장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접근법들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그대를 지금 당장 자유롭게 한다! 죄악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거룩함에 대한 모든 것을 잊어라. 두 가지 모두 어리석다. 두 가지가 함께 인류의 모든 기쁨을 파괴해 왔다. 죄인은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그의 기쁨이 상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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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대가 끊임없이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면, 어떻게 삶을 즐길 수 있겠는가? 만약 그대가 끊임없이 이것을 잘못했고, 저것을 잘못했다고 고해하기 위해서 교회에 가고 있다면? 그리고 잘못, 잘못, 또 잘못……. 그대의 삶 전체가 죄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그대가 삶을 즐겁게 살 수 있겠는가? 삶 속에서 기뻐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대는 무거워지고, 짐 지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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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은 하나의 바위처럼 그대의 가슴 위에 앉는다, 그것은 그대를 짓누른다. 그것은 그대가 춤추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대가 춤을 출 수 있겠는가? 어떻게 죄의식이 춤을 출 수 있겠는가? 어떻게 죄의식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죄의식이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죄의식이 삶을 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죄가 있고, 짐 지워지고, 죽기 전에 죽은 것이다, 그는 이미 무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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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은 고타마 붓다의 사촌이자 제자였던 ‘아난다(Ananda)’이다. 그는 줄곧 붓다 곁에 있었고, 42년 동안 붓다의 시중을 들었다. 붓다가 죽었을 때, 아난다가 여전히 붓다 곁에서 흐느껴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른 제자들은 그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몹시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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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절대적으로 충족된 채로 죽었기 때문에, 아난다도 기뻐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난다는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오해하고 있소. 나는 붓다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에 울고 있소. 나는 오랫동안 그분 곁에 계속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이루지 못했소.” 아난다는 그 날 밤 내내 깨어 있었다. 그리고 명상에 깊이 잠기고, 그의 슬픔과 고통을 느꼈다. 아침 무렵에, 그는 깨달았다고 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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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슬픔의 시기는 커다란 변형의 시기일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변형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깊이 우리의 고통의 뿌리까지 들어가, 그 고통을 비난이나 자기 연민 없이, 있는 그대로 체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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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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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통은 그대를 슬프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하라. 그것이 사람들이 계속 놓치고 있는 곳이다. 이 고통은 단지 그대를 더욱 깨어 있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왜냐 하면 사람들은 그 화살이 그들의 가슴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들에게 상처를 입힐 때에만 깨어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깨어 있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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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쉽고 편안하고 편리한데 누가 신경을 쓰겠는가? 누가 깨어 있는 것에 신경을 쓰겠는가? 한 사람의 친구가 죽을 때, 거기에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 그대의 여자가 그대를 홀로 두고 떠나갈 때 - 그 어두운 밤들, 그대는 외롭다. 그대는 그 여자를 너무나 사랑해 왔고, 그대의 모든 것을 걸어 왔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어느 날, 그녀는 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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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외로움 속에 우는 것, 그러한 순간들이, 만약 그대가 그러한 것들을 이용한다면, 그대가 각성할 수 있는 그런 경우들이다. 그 화살은 아프다. 그것은 이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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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통은 그대를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지 않고, 그 고통은 그대를 더욱 각성하도록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그대가 각성하고 있을 때, 비참함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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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그의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 의식의 진화를 묘사하고 있다. 그는 낙타, 사자, 어린아이, 세 가지 수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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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졸리고 지루해하며 자기만족에 빠져 있다. 낙타는 망상 속에 살면서 자신이 산봉우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에 너무나 신경 쓰고 있기 때문에, 거의 자기 자신의 에너지가 없다. 낙타에서 나오는 것이 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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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삶을 놓쳐 왔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요구들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군중들로부터 빠져 나와 홀로 당당하게 우리의 진리를 포효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어린아이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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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순종하지도 반역하지도 않지만, 순수하고 즉흥적이며, 자신의 존재에 진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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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당신이 어떤 공간 속에 있든지 - 졸리고 침울해하든지 아니면 포효하고 반역적이든지 - 당신이 허용한다면, 그것이 새로운 그 무언가로 진화할 수 있음을 각성하라. 지금은 성장과 변화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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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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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에서, 그대는 그 어느 곳도 아닌 곳에서 오고 있으며, 그 어느 곳도 아닌 곳으로 가고 있다. 그대는 단지 지금 여기에 존재할 뿐,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그대를 지나쳐간다. 그대의 의식은 그것을 비추지만, 동일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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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사자가 하나의 거울 앞에서 포효할 때, 그 거울도 포효한다고 생각하는가? 혹은 그 사자가 가고 어린아이 하나가 춤추면서 오면, 그 거울은 그 사자에 대해선 완전히 잊고 그 어린아이와 함께 춤추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그 거울이 그 어린아이와 춤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거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비출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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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의식은 단지 하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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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는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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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물들은 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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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젊게 되고, 그대는 늙게 된다. 그대는 살아 있다가 그대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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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든 상태들은 단지 ‘의식’이라는 하나의 영원한 연못에 비춰진 것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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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 속에서 마음의 영향은 일반적으로 우스꽝스럽거나 억압적이기 때문에, ‘마음의 카드패’에 나오는 대부분의 카드들은 만화 같거나 아니면 걱정거리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 ‘의식’ 카드는 거대한 붓다의 형상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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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너무나 확장되어 있기 때문에 별들마저도 넘어서 있고, 그의 머리 위에는 순수한 공(空)이 존재한다. 그는 마음의 주인이 되어, 마음을 그것의 원래 용도였던 하인으로 부릴 수 있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의식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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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 카드를 뽑았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수정과 같은 명료함이 가능하며, 그 명료함이 초연히 당신의 존재의 핵(核)에 있는 깊은 고요함에 뿌리내려져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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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마음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욕망은 없다 -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이해는 존재에 기반을 두고 있고 전체적이며, 삶의 맥박 그 자체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귀중한 선물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것을 나누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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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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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지(未知)로부터 와서, 미지 속으로 계속 움직여 간다.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수천 번이나 이 곳에 존재해 왔으며, 수천 번이나 이 곳에 존재할 것이다. 우리의 본질적인 존재는 죽지 않지만, 우리의 몸, 우리에게 부여된 형상은 죽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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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우리가 존재하는 우리의 틀, 우리의 집들, 몸, 마음, 그것들은 모두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은 지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늙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죽을 것이다. 하지만 보리 달마가 그것에 대해 ‘무심(無心)’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 고타마 붓다 역시 ‘무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왔다 - 그대의 의식은 몸과 마음 너머의 그 무엇이며, 모든 것 너머의 그 무엇이다. 무심은 영원하다. 그것은 표현(表現) 속으로 왔다가, 다시 미지 속으로 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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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未知, unknown)에서 기지(旣知, known)로 그리고 기지에서 미지로의 움직임은 그 누군가가 깨닫게 되지 않는 한 영원히 계속된다. 그 때 그 삶이 그의 마지막 삶이다. 그 때 이 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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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각성하게 된 이 꽃은 삶으로 돌아올 필요가 없다. 왜냐 하면 삶은 그 안에서 배우는 하나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교훈을 배웠다, 그는 이제 망상(妄想)들을 넘어서 있다. 그는 처음으로 기지에서 미지 속으로가 아닌, 불가지(不可知, unknownable) 속으로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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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은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그는 전혀 심각해하지 않고 가볍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동시에 완전히 균형 잡혀 있고, 깨어 있다. 소용돌이치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물살 뒷편으로 건물들의 모양들이 보인다. 그 배경은 하나의 도시처럼 보인다. 이 사람은 시장에 있으면서 동시에 시장을 벗어나 있으며, 자신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위에서 지켜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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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다른 시간들과 다른 공간들에 정신을 팔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깨어 있으라고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다. 당신의 판단들, 당신의 취향들, 그리고 당신의 장기적인 계획들의 세세한 부분들에 대한 집착을 떨쳐 버린다면, 삶은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대양(大洋)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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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는 길에 무엇이 찾아오든, 그것이 찾아올 때 받아들여라. 그리고 돌부리에 채이거나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라. 그저 일어나서 먼지를 툭툭 털고, 한 번 크게 웃고, 가던 길을 계속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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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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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두 가지 모두는 존재하지 않는 방향들로 불필요하게 움직이고 있다. 인간은 존재했었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심지어 존재하기 시작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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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올바른 사람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사는 사람, 그의 화살이 순간에 향해 있는 사람, 항상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람이다. 그가 어디에 있든지 그의 의식 전체와 그의 존재 전체는 ‘지금’이라는 실재, ‘여기’라는 실재에 몰두한다. 그것이 유일하게 올바른 방향이다. 오직 그런 사람만이 그 황금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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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가 그 황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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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그 황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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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대가 야망적이지 않을 때에만 - 성취, 권력, 돈, 명예, 심지어 깨달음에 대한 욕망도 없을 때, 현재에 존재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모든 야망은 그대를 미래로 이끌기 때문이다. 오직 야망이 없는 사람만이 현재에 남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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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존재하고자 하는 사람은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단지 보고, 그 문으로 들어가면 된다. 경험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경험은 미리 계획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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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에 나오는 무지개 빛깔의 천사와 같은 형상은, 우리 각자가 내면에 지니고 있는 인도자를 상징한다. 뒷배경 속의 두 번째 인물처럼, 우리는 때때로 이 인도자가 우리에게 찾아올 때, 신뢰하는 것을 약간 꺼린다. 왜냐 하면 우리는 안보다는 바깥을 따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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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존재의 진리는 당신에게, 바로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를 보여 주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카드가 나올 때, 그것은 당신에게 주어진 내면의 인도를 신뢰해도 좋다는 뜻이다. 그것은 우리 귀에 대고 속삭이고 말하지만, 이따금 우리는 올바르게 이해한 것인지 몰라서 주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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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카드가 가리키는 것들은 분명하다. 그 내면의 인도자를 따르면, 마치 당신이 당신 존재의 바로 그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더욱 전체가 된 것을, 더욱 통합된 것을 느낄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과 같이 가면, 이 빛줄기는 당신을 정확하게, 당신이 가야 할 필요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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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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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대 안에 내면의 인도자가 감춰져 있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는 인도(guidance)를 찾아야만 한다. 그대는 그 내면의 인도자를 발견해야만 하며, 그것이 내가 그대의 ‘지켜보는 자(witness)’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대의 ‘법(法, dharma)’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대의 ‘본질적인 붓다’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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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 붓다를 깨워야만 한다. 그러면 그대의 삶은 은총들을, 축복들을 쏟아 줄 것이다. 그대의 삶은, 그대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선(善)으로, 신성(神性)으로, 너무나 빛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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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거의 빛과 같다. 그대의 방이 어둡다, 그저 그 안에 빛을 가져오라. 심지어 작은 촛불로도 충분할 것이고, 어둠 전체가 사라진다. 그리고 일단 그대가 촛불을 하나 가지게 되면, 그대는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 그대는 ‘문이 어디에 있지?’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직 눈먼 사람들만이, 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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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거기 빛이 있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문이 어디에 있지?’하고 그대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대는 그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다. 그대는 결코, 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대는 문을 찾느라 더듬거리거나, 벽에 이마를 부딪치지 않는다. 그대는 그저 본다. 그리고 심지어 단 하나의 생각도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그대는 그저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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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성은 자신의 둘레에 하나의 요새를 쌓아 왔으며, 자신이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소유물들에 집착하고 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을 꾸미기 위해 너무도 많은 것들을 모아 왔으며 - 살아 있는 동물들의 깃털이나 모피를 포함해서 - 그 노력 속에서 스스로를 추하게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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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것, 자신이 느끼기에 너무나 소중하다고 생각되어 요새 안에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것을 한번 들여다보라고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다. 그것이 거액의 예금 통장이나 보석이 가득한 상자일 필요는 없다 - 친구와 시간을 함께한다거나, 혹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과 같은 작은 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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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을 봉해 버리면,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해 물이 고여 있는 것처럼, 만약 우리의 보물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를 거부한다면, 그것들은 녹슬게 되고 가치가 없어진다. 당신이 꼭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이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이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아라. 그리고 나눔이 가져올 수 있는 그 자유와 확장감을 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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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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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인색해지는 순간, 그대는 삶의 기본적인 현상 - 바깥으로 펼침(ex-pansion)과 나눔 - 에 대해 닫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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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에 집착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대는 그 표적을 놓쳐 버린다 - 그대는 놓쳤다. 왜냐 하면 사물들이 그 표적이 아니라, 그대, 그대 가장 깊은 곳의 존재가 그 표적이기 때문이다 - 아름다운 집이 아니라 아름다운 그대, 많은 돈이 아니라 풍요로운 그대, 많은 것들이 아닌 수백만 가지의 것들이 가능한 열린 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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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카드의 작은 아이는 문 한쪽에 서서, 그 문을 통해서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너무나 작고, 자신은 통과할 수 없다고 너무나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문에 걸려 있는 쇠사슬의 자물쇠가 잠겨 있지 않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냥 열기만 하면 되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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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버려지고’ 혹은 소외되었다고 느낄 때면, 그것은 언제나 작고 무력한 아이가 된 듯한 이 느낌을 가져온다. 그 느낌은 우리의 아주 어린 시절의 경험들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 깊이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 속에서 마치 테잎처럼 계속해서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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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그 테잎을 멈출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당신이 받아들여지기에는, 그리고 끼기에는 왠지 ‘충분치’ 않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혀 왔던 것을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러한 감정들의 뿌리들을 과거 속에서 찾아보고, 그 오랜 고통을 놓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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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당신에게 어떻게 그 문을 열고, 당신이 너무도 되고 싶었던 ‘그것’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는 명료함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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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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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대는 그대 자신을 하나의 소외된 사람으로 느낀다. 이것은 좋다. 이것은 그 과도기이다. 이제 그대는 그대 자신을 고통과 비참함으로 채우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만 한다. 이제 더 이상 신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누가 그대를 위로해 줄 것인가? 그대는 어떤 위로도 필요하지 않다. 인류는 성년이 되었다. 하나의 남성이 되라, 하나의 여성이 되라. 그리고 그대의 두 발로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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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연결되는 유일한 길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 중심에서 그대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육체적으로는 그대의 어머니로부터 단절되었다. 그대 자신의 권리 속에서, 그대를 하나의 개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러한 단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그대가 우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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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그대와의 연결은 의식의 연결이다. 그대는 그것을 볼 수 없다, 따라서 커다란 각성, 깨어 있음, 지켜봄을 가지고 깊이 들어가라. 그러면 그대는 그 연결을 발견할 것이다. 붓다가 그 연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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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의 일본 왕실에서는 종종,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거세된 사람들 중에서 환관(宦官)을 뽑았다. 그들은 궁중의 일들을 아주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정치적, 사회적 음모를 주도했으며, 막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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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의 두 인물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진리를 타협했을 때 처하게 되는 지저분한 음모의 상황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다른 사람과 타협하고, 우리 자신의 것과 다른 관점을 이해하며, 그 대립되는 힘들 사이의 조화를 향해 나아가는 한 가지 방법이 있고, ‘굴복하고’ 우리 자신의 진리를 배반하는 완전히 다른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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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그것을 깊이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보통, 우리가 무언가 - 그것이 권력이건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이건 - 를 얻으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유혹받고 있다면 조심하라. 이런 종류의 타협은 항상 입 안에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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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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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똑같은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길에서의 어설픈 기교들, 그리고 명상의 길에서의 어설픈 기교들은 그대 안에 많은 혼란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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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에고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대는 타협하려고 한다. 이러한 타협은 더 위험할 것이다, 그것은 그대를 더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혼란으로부터 만들어져서 더 많은 혼란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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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왜 그대가 타협을 갈망하는지 이해하도록 노력하라. 조만간 그대는, 타협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타협은 어느 한쪽으로도 가지 않는, 한 가지 방법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것은 단지 그대의 혼란을 억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고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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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어떤 것도 억압하지 말라, 그대의 상황에 대해 분명하라. 그리고 만약 그대가 혼란스럽다면, 그대가 혼란스럽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것은 그대에 대해 분명한 첫 번째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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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여행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 "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는 때가 있다. 그 씨앗은 뿌려졌다, 아이는 자궁 속에서 자라고 있다, 조개가 모래알을 머금어 그것을 하나의 진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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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지금은 단지 깨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전부인 때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여기 그려진 여성은 바로 그런 마음가짐 속에 있다. 만족되어 걱정의 흔적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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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저 기다리고 있다. 머리 위에서 달이 찼다가는 기울어도, 그녀는 인내하면서 남아 있고, 너무나 달의 리듬과 조율되어, 그녀는 달과 거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그녀는 지금이 수동적이어야 하는 때임을 알고 있고, 자연이 그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나 그녀는 졸립지도 않고 무관심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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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금이 중대한 그 무엇을 준비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새벽이 오기 바로 직전의 시간들처럼, 지금은 신비로 가득 찬 때이다. 지금은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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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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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다리는 법을 잊어 버렸다. 그것은 거의 하나의 버려진 공간이다. 그리고 그 올바른 순간을 기다릴 줄 아는 것은 우리의 가장 커다란 보물이다. 존재 전체가 그 올바른 순간을 기다린다. 나무들조차도 그것을 안다 - 그것이 꽃들을 피워야 할 때와 모든 잎들을 놓아 버리고 하늘을 배경으로 벌거벗은 채로 서 있어야 할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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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벌거벗음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아름다우며, 옛 것은 갔고, 새 것이 곧 올 것이라는 커다란 신뢰를 가지고 새 잎들을 기다린다. 우리는 기다리는 것을 잊어 버렸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서두르기를 원한다. 그것은 인류에게 하나의 크나큰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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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기다림 속에, 그대 안의 무언가가 계속 성장한다 - 그대의 진정한 존재가……. 그리고 어느 날, 그것은 도약해서 하나의 불꽃이 되고, 그대의 인격 전체가 산산 조각이 난다. 그대는 하나의 새로운 인간이 된다. 그리고 이 새로운 인간은 의식(儀式)이 무엇인지 안다, 이 새로운 인간은 삶의 영원한 정수(精髓, juice)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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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 속을 걷고 있는 이 인물은, 삶의 단순하고 평범한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이 발견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너무나 쉽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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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을 청소하고, 정원을 가꾸고, 음식을 요리하는 것 - 가장 세속적인 일들도, 인정받거나 보상을 생각지 않고, 전체적으로 몰입해서 사랑으로 일 자체만을 위해서 행해진다면, 하나의 신성한 질(質)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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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마주치는 상황들에 대해 쉽고 자연스럽게 완전히 평범하게 접근한다면 영리하고, 뛰어나고, 혹은 비범해지려는 당신 쪽에서의 어떤 노력보다도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최신 소형 부품을 발명함으로써 신문의 머릿기사를 장식하거나, 자신만의 스타 기질로 친구나 동료들을 감탄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부 잊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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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이 베풀어야 하는 그 특별한 선물은 한 번에 한 걸음씩 모든 것들을 쉽고 단순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가장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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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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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하나가 되는 일이 어떤 드문 순간에 때때로 일어난다. 대양을 보라, 그 엄청난 거침을 - 그리고 갑자기 그대는 문득, 그대의 분열, 그대의 정신분열증을 잊어버린다. 그대는 이완한다. 혹은 히말라야 속으로 움직이다가, 히말라야산 꼭대기들 위의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볼 때, 문득 차분함이 그대를 감싼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거짓되어야 할 다른 인간이 없기 때문에, 그대는 거짓될 필요가 없다. 그대는 하나가 된다. 또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그대는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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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대가 하나가 될 때면, 언제나 하나의 평화, 하나의 행복, 하나의 지복이 그대를 감싸고, 그대 안에서 일어난다. 그대는 충족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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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순간들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 이러한 순간들이 그대의 자연스러운 삶이 될 수 있다. 이런 평범하지 않은 순간들이 평범한 순간들이 될 수 있다 - 그것이 선의 모든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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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주 평범한 삶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 나무를 베고, 장작을 패고, 우물에서 물을 길면서, 그대는 그대 자신과 함께 굉장히 편안할 수 있다. 마룻바닥을 닦고, 음식을 요리하고, 빨래를 하면서, 그대는 완벽하게 편안할 수 있다 - 왜냐 하면 모든 문제는, 그대가 그대의 행동을 전체적으로 하고, 그 속에서 즐기며 기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

과일이 무르익을 때, 그것은 저절로 나무에서 떨어진다. 한순간, 과일은 과즙을 물씬 머금고 나뭇가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그 다음 순간, 그것은 떨어진다 - 떨어지도록 강요된 것도 혹은 과일이 뛰어내리려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나무가, 과일이 무르익은 것을 알고, 다만 그것을 놓아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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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풀이에서 이 카드가 나올 때 그것은, 당신이 당신의 내면의 풍요로움과 당신의 ‘과즙’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일은, 당신이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휴식하고, 기꺼이 그것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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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당신 자신을 나누는 것, 이렇게 당신의 창조성을 표현하는 것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찾아올 수 있다 - 당신의 일, 당신의 관계, 당신의 매일매일의 삶의 경험 속에서……. 당신 쪽에서의 특별한 준비나 노력도 요구되지 않는다. 지금이 단지 그 올바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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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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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명상이 그대에게 매일 밤, 빛나는 한 줄기 빛을 가져다 줄 때에만, 죽음조차도 그대에게 하나의 죽음이 되지 않고, 신성으로 가는 하나의 문이 될 것이다. 그대 가슴 속의 빛으로 인해, 죽음 그 자체가 하나의 문으로 변형되고, 그대는 우주의 영혼 속으로 들어간다. 그대는 대양(大洋)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대가 그 대양과 같은 경험을 알지 못한다면, 그대는 헛된 삶을 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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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항상 그 때이고, 과일은 항상 무르익어 있다. 그대는 그저, 그대 내면의 숲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내면 된다. 과일은 항상 무르익어 있으며, 때는 항상 올바른 때이다. 올바르지 않은 때 같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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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카드에서 인류는, 삶이라는 선물에 대한 감사와 기쁨 속에서, 지구라는 만달라의 둘레를 손과 손으로 함께 연결된 채, 춤추는 존재들의 무지개로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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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는 교감할 때가 되었음을, 우리 각자가 전체에 가져다 주는 풍요로움을 나눌 때가 되었음을 상징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집착도 매달림도 없다. 그것은 우월감과 열등감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하나의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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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 인류의 공통된 근원을, 우리의 꿈들과 갈망들, 우리의 희망들과 두려움들의 공통된 기원(基源)을 인식할 때, 우리는 우리 모두가 존재의 커다란 기적 속에서 한데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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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사랑과 지혜라는 보물을 창조하기 위해 우리의 엄청난 내면의 부(富)를 한데 합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없이 아름다운, 영원한 창조의 무늬 속에 한데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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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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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전체의 수많은 사람들이 축하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환희에 차 있고, 신성(神性)에 취해 있을 때, 전 세계적인 자살의 가능성은 없다. 그러한 축제와 함께 그리고 그러한 웃음과 함께, 그러한 건전함과 건강과 함께, 저절로 일어남 그리고 자연스러움과 함께, 어떻게 거기에 전쟁이 존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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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창조하고, 기뻐하고, 축하하도록 그대에게 주어졌다. 그대가 눈물을 흘리고 울 때, 그대가 비참할 때, 그대는 홀로이다. 그대가 축하할 때, 존재 전체가 그대와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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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축하 속에서만 우리는 궁극, 영원을 만난다. 오직 축하 속에서만 우리는 삶과 죽음의 고리를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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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은 홀로 서 있다. 침묵하면서도 깨어 있는 채로……. 그리고 그 내면의 존재는 봄날의 질(質)을 지니고 있고, 그가 가는 곳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꽃들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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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면의 꽃피어남과 그가 느끼는 온전함(wholeness)은 무한한 이동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는 어떤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 - 그의 기쁨과 성숙함은 외적인 것들에 의해 줄어들 수 없기 때문에, 내면과 외면은 차이가 없다. 그는 중심 잡히고 확장되어 있는 때에 이르렀다. 그의 몸 주위의 흰 빛은 그의 보호막이며 그의 빛이다. 삶의 모든 경험들이 그에게 이 완성의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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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 카드를 뽑았다면, 이 순간이, 당신이 잘 치러 낸 힘든 일에 대한 하나의 선물임을 잘 알고 있어라. 지금 당신의 기반은 단단하며, 성공과 행운이 당신의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들은 이미 내면에서 체험된 것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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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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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과 꽃들의 차이는, 그대가 하나의 붓다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대와, 그대가 하나의 붓다라는 것을 그대가 아는 그 순간과의 차이와 같다. 사실, 달리 존재하는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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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완전히 꽃피어나고 완전히 열려 있다. 그의 연꽃들과 그의 꽃잎들은 하나의 완성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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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자신이 봄(春)으로 가득 찬 것이, 연꽃잎들 위에 떨어지는 가을 이슬들보다 확실히 훨씬 더 아름답다. 가을 이슬들이 연꽃잎들 위에 떨어지고, 아침 해 속에서 진짜 진주처럼 빛날 때, 그것은 지켜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물론 그것도 하나의 순간적인 경험이다. 해가 떠오르면서 그 가을 이슬들은 증발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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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시적인 아름다움은 그대 존재 속의 영원한 봄과는 확실히 비교될 수 없다. 그대가 최대한 멀리 뒤를 보아도, 그것은 항상 거기에 있어 왔다. 최대한 많이 앞을 보라. 그러면 그대는 놀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대의 존재이다. 그대가 어디에 있든지 그것은 항상 거기 있을 것이며, 그 꽃들은 계속해서 그대 위로 쏟아질 것이다. 이것이 영적(靈的)인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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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unction get_tarot_text_1(idx) { return tarot_texts_1[idx]; } const OneCard_description = '\n\

오늘을 위한 카드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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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든 그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얻기 위한 혹은 그 날의 명상을 위한 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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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의 궁금한 상황을 상상하며, 멈추고 싶을 때 카드 뒷면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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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타난 카드 그림을 누르고, 카드에 대한 설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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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시 하고 싶다면, 상단의 [1장] 버튼을 누른 후 1, 2 순서대로 다시 한다.

\n\ '; const FourCard_description = '\n\ \

관계를 위한 카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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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상대가 연인, 친구, 형제, 부모, 직장 상사이든 상관없이 그 상대와의 관계를 살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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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 자신을 상상하고, 1번 카드 뒷면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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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대방을 상상하고, 2번 카드 뒷면을 누른다.

\n\

3. 3번, 4번 카드 뒷면을 순서대로 누른다.

\n\

4. 각 카드에 나타난 그림을 누르고, 각 카드에 대한 설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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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신이 뽑은 배치도로 돌아가고 싶으면, 각 카드의 그림을 다시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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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다면, 상단의 [4장] 버튼을 누른 후 1에서 4번 순서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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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의미
1 당신-당신이 지금 여기에서 관계에 미치는 영향
2 상대방-상대방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
3 서로의 에너지
4 해결책
\n\ '; // \n\ const tarot_titles = [ "", "바보", "존재", "내면의 목소리", "창조성", "반역자", "무(無)", "연인", "깨어 있음", "용기", "홀로 있음", "변화", "도약", "새로운 시각", "변형", "통합", "조건화", "번개", "침묵", "전생", "순수", "환영의 초월", "완성", "스승", "창조자", "나눔", "강렬함", "놀이", "치유", "수용성", "신뢰", "이해", "통제", "도덕", "싸움", "마음", "풍요", "꽃피어남", "여유", "모험", "가능성", "체험하기", "참여", "전체성", "성공", "스트레스", "여행", "소모", "억압", "근원", "친밀함", "축제", "내면으로의 전환", "과거에 대한 집착", "꿈", "투사", "내맡김", "게으름", "조화", "흘러감", "정신분열증", "고립", "연기", "비교", "짐", "술수", "죄의식", "슬픔", "다시 태어남", "의식", "순간에서 순간으로", "인도", "구두쇠", "소외", "타협", "인내", "평범함", "무르익음", "우리는 하나", "성숙", ]; function get_tarot_title (idx) { return tarot_titles[idx]; } const tc_infos = [ "", "01 : Zen Tarot : Major : 0 : The Fool : 바보", "02 : Zen Tarot : Major : 1 : Existence : 존재", "03 : Zen Tarot : Major : 2 : Inner Voice : 내면의 목소리", "04 : Zen Tarot : Major : 3 : Creativity : 창조성", "05 : Zen Tarot : Major : 4 : The Rebel : 반역자", "06 : Zen Tarot : Major : 5 : No-Thingness : 무(無)", "07 : Zen Tarot : Major : 6 : The Lovers : 연인", "08 : Zen Tarot : Major : 7 : Awareness : 깨어 있음", "09 : Zen Tarot : Major : 8 : Courage : 용기", "10 : Zen Tarot : Major : 9 : Aloneness : 홀로 있음", "11 : Zen Tarot : Major : 10 : Change : 변화", "12 : Zen Tarot : Major : 11 : Breakthrough : 도약", "13 : Zen Tarot : Major : 12 : New Vision : 새로운 시각", "14 : Zen Tarot : Major : 13 : Transformation : 변형", "15 : Zen Tarot : Major : 14 : Integration : 통합", "16 : Zen Tarot : Major : 15 : Conditioning : 조건화", "17 : Zen Tarot : Major : 16 : Thunderbolt : 번개", "18 : Zen Tarot : Major : 17 : Silence : 침묵", "19 : Zen Tarot : Major : 18 : Past Lives : 전생", "20 : Zen Tarot : Major : 19 : Innocence : 순수", "21 : Zen Tarot : Major : 20 : Beyond Illusion : 환영의 초월", "22 : Zen Tarot : Major : 21 : Completion : 완성", "23 : Zen Tarot : Major : 22 : The Master : 스승", "24 : Zen Tarot : Fire : King : The Creator : 창조자", "25 : Zen Tarot : Fire : Queen : Sharing : 나눔", "26 : Zen Tarot : Fire : Knight : Intensity : 강렬함", "27 : Zen Tarot : Fire : Page : Playfulness : 놀이", "28 : Zen Tarot : Water : King : Healing : 치유", "29 : Zen Tarot : Water : Queen : Receptivity : 수용성", "30 : Zen Tarot : Water : Knight : Trust : 신뢰", "31 : Zen Tarot : Water : Page : Understanding : 이해", "32 : Zen Tarot : Clouds : King : Control : 통제", "33 : Zen Tarot : Clouds : Queen : Morality : 도덕", "34 : Zen Tarot : Clouds : Knight : Fighting : 싸움", "35 : Zen Tarot : Clouds : Page : Mind : 마음", "36 : Zen Tarot : Rainbows : King : Abundance : 풍요", "37 : Zen Tarot : Rainbows : Queen : Flowering : 꽃피어남", "38 : Zen Tarot : Rainbows : Knight : Slowing Down : 여유", "39 : Zen Tarot : Rainbows : Page : Adventure : 모험", "40 : Zen Tarot : Fire : 2 : Possibilities : 가능성", "41 : Zen Tarot : Fire : 3 : Experiencing : 체험하기", "42 : Zen Tarot : Fire : 4 : Participation : 참여", "43 : Zen Tarot : Fire : 5 : Totality : 전체성", "44 : Zen Tarot : Fire : 6 : Success : 성공", "45 : Zen Tarot : Fire : 7 : Stress : 스트레스", "46 : Zen Tarot : Fire : 8 : Traveling : 여행", "47 : Zen Tarot : Fire : 9 : Exhaustion : 소모", "48 : Zen Tarot : Fire : 10 : Suppression : 억압", "49 : Zen Tarot : Fire : Ace : The Source : 근원", "50 : Zen Tarot : Water : 2 : Friendliness : 친밀함", "51 : Zen Tarot : Water : 3 : Celebration : 축제", "52 : Zen Tarot : Water : 4 : Turning In : 내면으로의 전환", "53 : Zen Tarot : Water : 5 : Clinging to the Past : 과거에 대한 집착", "54 : Zen Tarot : Water : 6 : The Dream : 꿈", "55 : Zen Tarot : Water : 7 : Projections : 투사", "56 : Zen Tarot : Water : 8 : Letting Go : 내맡김", "57 : Zen Tarot : Water : 9 : Laziness : 게으름", "58 : Zen Tarot : Water : 10 : Harmony : 조화", "59 : Zen Tarot : Water : Ace : Going With The Flow : 흘러감", "60 : Zen Tarot : Clouds : 2 : Schizophrenia : 정신분열증", "61 : Zen Tarot : Clouds : 3 : Ice-olation : 고립", "62 : Zen Tarot : Clouds : 4 : Postponement : 연기", "63 : Zen Tarot : Clouds : 5 : Comparison : 비교", "64 : Zen Tarot : Clouds : 6 : The Burden : 짐", "65 : Zen Tarot : Clouds : 7 : Politics : 술수", "66 : Zen Tarot : Clouds : 8 : Guilt : 죄의식", "67 : Zen Tarot : Clouds : 9 : Sorrow : 슬픔", "68 : Zen Tarot : Clouds : 10 : Rebirth : 다시 태어남", "69 : Zen Tarot : Clouds : Ace : Consciousness : 의식", "70 : Zen Tarot : Rainbows : 2 : Moment to Moment : 순간에서 순간으로", "71 : Zen Tarot : Rainbows : 3 : Guidance : 인도", "72 : Zen Tarot : Rainbows : 4 : The Miser : 구두쇠", "73 : Zen Tarot : Rainbows : 5 : The Outsider : 소외", "74 : Zen Tarot : Rainbows : 6 : Compromise : 타협", "75 : Zen Tarot : Rainbows : 7 : Patience : 인내", "76 : Zen Tarot : Rainbows : 8 : Ordinariness : 평범함", "77 : Zen Tarot : Rainbows : 9 : Ripeness : 무르익음", "78 : Zen Tarot : Rainbows : 10 : We Are the World : 우리는 하나", "79 : Zen Tarot : Rainbows : Ace : Maturity : 성숙", ]; function get_card_info (idx) { return tc_infos[idx]; }